[다시 '왕벚'을 부르다] (8)'관음사 왕벚'은 지금

[다시 '왕벚'을 부르다] (8)'관음사 왕벚'은 지금
유전체만 따져 '일본 왕벚' 판단… "섣부른 발표" 지적
  • 입력 : 2023. 05.25(목) 00:00  수정 : 2023. 05. 25(목) 16:35
  •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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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제주시 오등동 관음사지구야영장에 있는 제주도 향토유산 3호이자 기준어미나무인 왕벚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다. 강희만기자

제주 왕벚나무 기준어미이자 향토유산인 '관음사 왕벚'
국립수목원 연구 발표로 '왕벚 기원 논란' 중심에 놓여
이전에 유사 연구에서는 "야생 왕벚 가능성 배제 못해"
섣부른 단정 위험… 국가 기관으로서 보다 더 신중해야


[한라일보] '왕벚나무 기준어미나무'. 제주시 오등동 관음사지구야영장에 세워진 표지석입니다. 이 안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왕벚나무의 자생지 보존과 함께 보급과 개량의 모수로 활용하기 위하여 나무의 모양과 개화 특성이 뛰어난 이 나무를 기준어미나무로 선정하였습니다.' 2015년 4월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과 한국식물분류학회, 제주특별자치도가 함께 세웠습니다.

기준어미나무는 제주 자생 왕벚나무 중에도 학술적, 자원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됩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생육 상태와 나무 모양, 개화 형질 등을 고려해 이 나무를 '기준어미'로 정했습니다. 지정 당시 추정 수령으로 추산하면 올해로 148살입니다. 높이 15m, 밑동 둘레 3.45m에 달하는 이 나무는 제주도 향토유형유산 3호이기도 합니다.

|재배 왕벚과 '유전적 일치'에 자생 아니다?

향토유산 3호이자 기준어미나무인 이 나무(이하 관음사 왕벚)가 '왕벚나무 기원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산림청 국립수목원과 명지대·가천대 연구팀이 2018년 발표한 연구 결과가 도화선이 됐습니다. 핵심은 '제주 왕벚나무와 일본 왕벚나무는 서로 다른 식물'이라는 건데, 연구진은 관음사 왕벚도 사실상 '일본 왕벚'이라고 봤습니다. 유전체 분석 결과 일본 도쿄와 미국 워싱턴에 심어진 '일본 왕벚나무'(연구진이 재배품종에 붙인 말)와 같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이 연구 결과를 담아 국제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제주도의 자연림에서 자라지만 우리는 Pyn-Jeju5(관음사 왕벚)가 경작지에서 탈출한 Pxy(재배 왕벚)라고 가정합니다.' 쉽게 말해, 관음사 왕벚 1개체를 가로수와 같은 재배 왕벚으로 본 것입니다. 그렇다면 관음사 왕벚은 진짜 '재배 왕벚'이 맞는 걸까요.

관음사 왕벚이 재배 왕벚과 유전적으로 비슷하다는 연구 결과는 사실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조명숙 등이 2016년 발표한 '타케 신부의 왕벚나무: 엽록체 염기서열을 통한 야생 왕벚나무와 재배 왕벚나무의 계통학적 비교'에도 유사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당시 연구에선 제주 자생 왕벚나무 10개체 중 관음사 왕벚 1개체만 '재배 왕벚나무 고유의 반수체형(Haplotype C)'에 포함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에 연구진은 "이 개체가 진정한 야생 왕벚나무인지, 아니면 재배 왕벚나무인지에 관한 분류학적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도로에 식재됐던 왕벚나무 재배품종이 관음사 숲속으로 퍼져 나갔거나 절 주변 숲에 재배 왕벚나무를 관상용으로 식재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단언은 하지 않았습니다. 연구진은 "아직은 이 개체(관음사 왕벚)가 야생 왕벚나무의 일종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후속 연구 등을 통해 더 규명해야 할 부분이 남아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제주시 오등동 관음사지구야영장에 세워진 '왕벚나무 기준어미나무' 표지석. 강희만기자

|조류 배설물로 전파 가능성?

국립수목원 공동연구진이 관음사 왕벚을 재배종으로 본 근거는 무얼까요. 이 역시 '유전적 동일함'이 크게 작용합니다. 당시 연구 책임을 맡았던 명지대 A교수는 "향토유산 3호(관음사 왕벚)를 제외하곤 제주 자연생태계에서 '일본 왕벚'과 (유전적으로) 같은 것을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경작지 탈출'이 아닌 또 다른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A교수는 "제주에 왕벚나무를 처음 심기 시작한 게 80년이 넘었다"면서 "버찌(벚나무 열매)를 먹은 새의 배설물을 통해 숲속에 왕벚나무 씨앗이 발아해 자라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관음사 왕벚의 수령을 현재 추정보다 낮게 잡은 견해입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을 따져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제주에서 재배 왕벚이 처음 심어진 시기는 1935년쯤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90년 전쯤 서귀면장이던 김찬익 씨가 일본에서 재배 왕벚 묘목을 대량으로 들여와 서귀포를 중심으로 일주도로에 심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조류 연구 전문가인 최창용 서울대학교 교수는 "버찌는 과육에 당분이 있고 수분도 섭취할 수 있어 새들이 좋아하는 먹이"라면서 "제주에 많은 직박구리나 큰부리까마귀 같은 종이 버찌를 먹고 토해 내거나 배설을 하면서 종자를 전파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다만, 그 열매를 맺은 어미나무 주변으로 전파되는 게 일반적인 양상이라며 "(재배 왕벚이 처음 심어진 서귀포에서 한라산 관음사까지) 새에 의해 우연히 전파됐다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인위적인 요인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했습니다.

꺾꽂이나 접붙이기가 아닌 종자를 통해 유전적으로 같은 왕벚을 얻을 가능성이 낮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습니다. 벚나무의 경우 '자가불화합성'이 강한 식물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나무 간에, 즉 '타가수분'으로 번식하는 특성상 종자 번식은 '똑같은 형질'을 유지하기 어려울 거라는 얘기입니다.

|관음사 왕벚이 재배 왕벚의 기원?

누군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심어졌을 가능성은 어떨까요. '한라산 해발 600m 고지'라는 지리적 위치를 고려했을 때 이 역시 확률이 높지 않을 거라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1950년대부터 한라산을 올랐다는 도내 원로 사진작가 고길홍(82) 씨는 "당시에는 버스도 없을 때여서 한라산을 오르려면 시내에서 관음사까지 가서 하룻밤 자야 했다"며 "그런 옛날에 누가 벚나무를 거기에 심었을 생각이나 했겠느냐"고 되물었습니다. 만약 조경용으로 심었다면 왜 유독 1개체인가라는 물음도 있습니다.

이는 거꾸로, 관음사 왕벚이 오히려 '재배 왕벚'의 기원일 수 있다는 가능성과 연결됩니다. 관음사 왕벚이 분명한 자생 왕벚이라고 전제한 가설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미국 등에 가로수로 널리 심어진 재배 왕벚의 기원을 특정할 수 없는데다 '일본 왕벚'의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제기되는 주장입니다. 이와 관련해 유전자가 다르다고 해서 '왕벚나무'라는 1개의 종을 둘로 쪼개는 것은 맞지 않다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확언할 수는 없습니다. 관음사 왕벚이 자생인지 재배 왕벚인지 분명히 밝히기 위해선 앞서 밝힌 의문을 토대로 더 따져볼 것이 남아 있습니다. '재배 왕벚'이 일본에서 들여와 국내에 심어지긴 했지만 일본 안에서도 그 기원을 특정할 수 없다는 것과도 연결된 과제입니다. 그래서 섣불리 단정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국가 연구기관의 발표라면 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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