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넷플릭스 등 OTT의 긍정적 영향은 우리나라처럼 내수시장이 작아서 영화를 만들기 위한 제작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나라에 미국과 중국보다는 못하지만, 대규모 예산이 투입돼 양질의 콘텐츠가 만들 수 있는 여건이 되고, 또 우리나라의 콘텐츠를 더 쉽게 외국의 관객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창구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관객들은 미국영화와 한국 영화 중심의 극장가에서 접해보지 못하는 세계 각국의 영상 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최근의 넷플릭스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독일 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도 그 좋은 사례이다. 이 영화는 독일인으로 1차 대전을 참전했던 소설가 에리히 레마르크의 동명의 1929년 반전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그의 대표 소설로 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인 1939년 파리의 망명자들을 배경으로 한 '개선문(1945)'이 있다. 독일 기준으로 서부전선은 프랑스와의 전쟁터이고, 동부전선은 러시아와의 전쟁터이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의 영화화는 드라마까지 포함해 지금까지 3번 이뤄졌으나, 과거의 두 편은 모두 미국의 할리우드에서 만들었고, 이번이 독일인의 손에 만들어진 버전이다. 첫 영화는 러시아 몰도바 출신의 루이스 마일스톤 감독에 의해서 1930년에 만들어졌고 반전영화의 대명사이면서 1990년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영화 유산으로 선정됐고 97년에는 미국영화 100년 유산에 포함됐다. 흑백영화이지만 1차대전의 참호전과 기관총, 탱크, 독가스, 대포 등 현대적 무기에 낡은 전투 교리를 벗어나지 못한 장군들의 무모한 돌격 지시로 쓰러져 가는 군인들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이 영화의 엔딩은 나중에 많은 반전영화가 따르고 있다. 드라마 버전은 딜버트 만 감독에 의해서 1979년에 만들어졌다.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에 의해서 독일이 하나의 제국으로 통일된 뒤에 제국확장을 추구하는 독일제국의 황제와 영토확장에 동조하는 독일 국민의 모습과 전선에서 피어나는 프랑스 여인들, 프랑스 군인과의 인류애를 보여준다. 넷플릭스의 버전은 1차 대전의 여파로 바이마르 공화국으로 바뀌었으나, 과도한 전쟁 배상금과 세계적 대공황에 지친 독일인들이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하고자 히틀러를 집권하게 하고 다시 2차세계대전을 일으켰던 역사가 있고 현재 독일의 동쪽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시점에서 독일인의 시각에서 만들어졌다는 데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쟁에서 죽은 군인들의 군복과 군화 등 군장을 벗겨내어 세탁하고 수선해 다시 입대를 자원한 젊은이들에게 지급하는 부분과 독가스 살포 후 화염방사기를 사용하는 마치 우주인들과의 전쟁을 벌이는 듯한 초현실적 장면은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고등학교 교수는 학생들에게 전쟁 참가를 고취하는 연설을 하고 후방에 나이 든 사람들은 전선의 상황을 체스 경기를 이야기하듯 한다. 아직 세상에서 꽃피워 보지 못한 젊은이들이 죽어간다. <김정호 경희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