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27)그래야 사랑이 올 수 있어 - 송남숙

[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27)그래야 사랑이 올 수 있어 - 송남숙
  • 입력 : 2023. 07.18(화) 00:00  수정 : 2023. 07. 18(화) 16:46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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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겠지

그런 지겨운 시간이, 그래야 사랑이 올 수 있으니까



가겠지

꽃다발을 하얀 붕대에 묶은 날, 정말 그건 진심이었으니까



오늘은 언덕에서 바다를 보고 있자니까

친구가 문자를 보내왔다



그리운 사람이라도 있느냐



나는 답 문자를 보냈다

선택할 수 있다면 수평선을 바라보며 뭔가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아닌 것 같아

오, 모르겠니

나는 남편을 갈아엎고 싶어서 바다를 보고 있는 거야



안 그러면 내 권위가 뭐가 되니

삽화=써머



언덕에서 망망한 바다를 보는 일이 사랑의 좌표를 확인하는 방식이라면 그건 내 안에 당신이, 혹은 당신 안에 내가 살고 있는지 호명하는 일일 것이다. 내가 되면서도 당신이 될 수 있는 일이 가능한 것일까. 사랑을 위해 마련해야 하는 것이 '죽도록 같이 산다'는 결심과 다짐일 때 누군가는 그 결심과 다짐을 계속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자기부정의 꽃그늘에서. 화자는 눈을 비비며 그런 맹목에서 깨어나려는 것 같다. 자기의 '권위'를 위해 사랑을 생각하는 존재는 완전히 다른 위상에서 자기와 세계를 보는 것이다. 어떤 지위가 부여되고 회수되는 일이 가능한 범주 안에 사랑도 있을 텐데, 사랑이란 그렇게 가장 인간다운 물음표를 던지는 일이라고 해보자. "갈아엎고"는 '갈아치우다'라는 뜻은 아니지만 지겨운 시간이 오면 사랑이 올 수 있는 시간이라고 사랑을 직면해 보자. 그를 잃지 않기 위해 끝까지 나를 잃어야 한다면 아름다운 것일까, 라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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