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바비'가 개봉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난감 인형 바비가 탄생한 지 64년 만에 실사 영화로 만들어진 '바비'는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아왔다. '프란시스 하'를 통해 국내 예술영화팬을 사로잡았던 배우이자 '레이디 버드'와 '작은 아씨들'로 오스카를 정 조준한 바 있는 감독 그레타 거윅이 이 프로젝트의 연출자로 낙점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바비 그 자체'라고 할 만한 배우 마고 로비가 주인공 '바비'역할을 맡은 데다 '라라랜드'를 통해 확고한 팬덤을 보유한 라이언 고슬링이 바비의 남자 친구 '켄'역할로 합류하며 '드디어 영화화된 바비'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이미 전작들을 통해 여성 성장 영화라는 자신만의 고유한 장르를 개척한 그레타 거윅의 '바비'는 감독의 인장이 또렷한 영화다. 인형의 세계를 놀랍도록 환상적으로 구현한 비비드한 영화의 색감 보다도 더 선명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그레타 거윅의 '바비'는 '바비 랜드'와 '리얼 월드'를 적극적으로 넘나 든다. 웃기지만 씁쓸하고 뾰족하지만 온기를 잃지 않는 영화는 화사하지만 창백한 인형 바비의 표정에 마침내 생기를 더한다. 영화 '바비'는 아마도 가장 화려한 블랙 코미디 영화인 동시에 신나는 장면들로 가득한 교육용 페미니즘 영화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핑크색을 기반으로 한 총 천연색 '바비 랜드'는 당연히 인형이 사는 세트다. 물 잔에는 물이 없고 샤워기에서는 물이 나오지 않는다. 의인화된 존재로 만들어졌지만 '바비 랜드'안에서의 모든 바비는 인간 이상으로 완전하다. 그들은 걱정 없이 행복하고 한계 없이 충만하다. 마고 로비가 연기하는 바비는 누구나 '바비'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올리는 '전형적인 바비'다. 금발의 글래머러스한 미녀인 마고 로비의 바비는 밝고 친절하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바비 랜드'에는 전형적인 바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다종다양의 외모와 직업을 가진 바비들이 함께 살아가며 성취를 일상화한다. 바비들은 공사장에서 에너지를 분출하고 바비 대통령과 함께 춤을 추고 노벨상도 품에 안는다. 그들은 그 자체로 완전한 삶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전형적인 바비'가 갑자기 '죽음'을 떠올리게 된다. 죽도록 춤추고 싶다는 말은 허락되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은 상상할 수도 없는 유토피아에서 살고 있는 바비들에게 찾아온 죽음이라는 이 낯선 키워드는 하이힐이 없이도 솟아올랐던 그녀의 발을 평평하게 만든다. 그리고 바비는 자신에게 벌어진 이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을 만들어낸 '리얼 월드'로 향하게 된다.
영화 '바비'는 어렵지 않다. 여자들이 최고인 세상에서 살던 바비가 리얼 월드로 건너오는 순간 모든 것이 일순간 명확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화려한 네온 컬러의 운동복을 입고 롤러 블레이드를 타며 '진짜 세상'에 진입한 바비는 순간 '리얼 월드'에 살고 있는 모두의 시선에 결박당한다. 처음 보는 바비에게 남자들은 아무렇지 않게 성추행을 일삼는다. 그런데 그 불쾌한 풍경이 관객의 눈에는 낯설지 않다.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자연스럽기 때문이라는 것은 아이러니다. 흥미로운 건 같은 차림인 켄은 그 '시선'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켄은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을 즐기기까지 한다.
영화 '바비'는 여성주의 운동을 50년이나 퇴보시켰다는 비난을 받는 인형 '바비'를 통해 무수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그레타 거윅은 여성의 손에 건네졌던 인형 바비를 살아 숨 쉬게 만들면서 여성들이 처한 위치와 고민, 불평등을 차례대로 이야기한다. '바비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 켄은 그냥 켄'이라는 영화의 홍보 문구 또한 의미심장하다. 너무 긴 세월 동안 호명되지 못한 채 뭉뚱그려졌던 바비들은 고유의 바비로 존재하지만 반대로 무수한 켄들은 그저 켄들일 뿐이다. '바비'는 페미니즘 영화로서의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는 영화다. 동시에 라이언 고슬링이라는 매력적인 배우의 호연 덕에 생생하게 살아낸 켄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진짜 나'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남성 관객에게도 묻는 영화이기도 하다. 완전하고 완벽한 세상도 사람도 여성상도 남성상도 없다는 것. 우리는 서로와 자신을 알아보기 위해 끊임없이 친절한 인사를 건네야 한다는 것. 누군가 이 영화가 불편하거나 불쾌하다면 그 감정의 말을 삼키지 말고 꺼내야 할 것이다. 하이 바비, 하이 켄.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그 '하이'에서 시작할 테니까.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