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해수, 바닷물의 밀도는 염분의 분량이 많을수록 증가한다고 한다. 나트륨이나 칼슘 같은 염류뿐만 아니라 화산의 분출물, 생물학적인 활동에 의한 부산물 등 여러 가지 물질이 녹아있는 아주 복잡한 용액인 해수. 해수는 바다가 바뀌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뜬금없이 과학 상식을 떠올린 건 해수의 위와 아래를 오가던 배우 김혜수 때문이다. 해수와 혜수.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범죄액션영화 '밀수'의 주인공은 데뷔 40년을 앞두고 있는 베테랑 배우 김혜수다. 영화 속에서 복잡한 사정을 품고 군천 앞바다의 밀수꾼이 되어버린 해녀 조춘자를 한과 흥으로 연기하는 김혜수를 보면서 영화라는 바다를 자신의 개성으로 유영하는 이 배우의 밀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배우의 품 안에는 대체 어떤 것들이 녹아 있기에 이토록 다채로운 색깔들이 모여 각각의 빛을 발할 수 있을까. 한국 영화의 모든 역할을 김혜수가 할 수는 없겠지만 어떤 역할은 오직 김혜수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끄덕이게 만드는 영화가 바로 '밀수'다. 앙상블 속에서도 유독 도드라지는 개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릭터들의 정반합을 이끌어내는 너른 품의 이 배우는 여름 극장가 대전의 포문을 여는 작품인 여성 투톱 블럭버스터의 주인공 자리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다.
배우 김혜수가 16살의 나이로 데뷔한 연도는 1986년이다. 근 40여 년 가까이 영화와 드라마에서 그리고 OTT 시리즈물에서도 중요한 역할들을 맡아온 이 배우의 세월은 한국에서 만들어진 무수한 콘텐츠의 조류를 타고 넘어온 서퍼의 그것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기억 속에 또렷한 작품들만 해도 큰 배를 차고 넘치게 담을 만하다. 자전거를 타고 날아오르던, 달뜬 첫사랑의 무드로 약동하던 이명세 감독의 영화 '첫사랑'에서의 영신 역할이 30년 전이고 구중궁궐을 뛰어다니던 여기저기 손 갈 일 많던 왕비 화령을 맡았던 드라마 '슈룹'이 바로 작년 배우 김혜수의 필모그래피다. 그 사이에는 대중적 인기를 모았던 영화 '타짜'와 '관상', '도둑들'의 잊기 힘든 강렬한 매혹이 있는가 하면 버석한 얼굴로 신산한 삶의 그늘을 들여다보던 영화 '차이나타운', '내가 죽던 날'과 시리즈 '소년심판' 속의 김혜수가 있다. 또한 특유의 밝고 건강한 활기로 작품을 견인했던 코미디 장르의 영화 '닥터 봉'과 그 개성과 정반대 지점에서도 충분한 매력을 발산한 영화 '좋지 아니한가'와 '이층의 악당'도 함께 자리한다.
장르의 파도를 넘나드는 건 배우 김혜수에겐 무척 흥미로운 일처럼 느껴진다. 드라마 '시그널'의 형사도 '직장의 신'의 회사원도 '굿바이 싱글'의 배우도 김혜수에겐 큰 점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흥미로운 건 늘 이 배우의 도약보다는 착지다. 김혜수는 관심을 안심시키는 배우다. 그것은 연기력이나 스타성 혹은 그 두 가지의 배합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것이다. 김혜수는 배우 자신의 개성을 지우지 않고 역할을 자신 안에 쌓는 타입의 배우에 가깝다. 배우 김혜수의 필모그래피는 점점 더 인간 김혜수를 잘 알게 만들고 있는데 이 화려한 스타에게 느끼는 친숙함은 그가 어떤 순간에도 책임을 다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기반한다. 파티장에서도, 전쟁터에서도 나와 닮은 누군가를 안아줄 것 같은 사람. 배우 김혜수는 거리낌 없이 응고된 감정을 일순간에 녹이는 꺼지지 않는 불같은 배우다.
영화 '밀수'에서 배우 김혜수가 연기한 조춘자는 어촌 마을에 나타난 화려하고 강인하며 외롭고 뒤틀린 여자다. 혹자는 '타짜'의 정마담을 연상할 수 있을 이 캐릭터를 배우 김혜수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조립해 낸다. 쉽게 사랑할 수 있지만 어렵게 미워할 수밖에 없는 조춘자는 서로 다른 극성을 한 몸에 지닌 자석과도 같은 캐릭터다. 조춘자의 인력과 척력은 영화의 안과 밖에서 모두 흥미롭게 기능하는데 특히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는 익숙한 김혜수와 낯선 김혜수 사이를 오가는 순간들이 종종 등장한다.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자맥질을 시도하는 배우 김혜수.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밀수'에는 김추자의 노래 '무인도'가 인상적으로 등장한다. '파도여 슬퍼 말아라, 파도여 춤을 추어라…. 불어라 바람아 드높아라 파도여 파도여'라는 호쾌한 기개의 가사를 곱씹으며 웃으면서 울 수 있는 배우, 포효와 포용이 동시에 가능한 배우 김혜수와 참으로 잘 어울리는 곡이라는 생각을 했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