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44)효돈동 하효마을

[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44)효돈동 하효마을
마을 공동체 정신을 기반으로 끊임없이 발전
  • 입력 : 2023. 08.11(금)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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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효돈동의 남쪽 마을이다. 명품감귤로 고소득을 올리는 마을이라는 선입견과 쇠소깍에 대한 인상이 너무 강렬하여 다른 관심이 생기지 않을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깊고 정겨운 사연들로 가득하다.

섬 제주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던 시기에 수렵과 채집을 하며 떠돌던 사람들이 가장 정착하여 살고 싶은 곳은 아마도 이곳 하효마을 지경이었을 것이다. 한라산 남쪽 아열대 습윤기후에 가까운 따뜻한 지역. 숲이 우거진 냇가는 바다와 닿아 있으며 굵은 검은 모래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해산물들이 있어서 생존을 영위하는데 더없이 좋았을 것이다. 지석묘와 같은 유적이 이곳저곳에 산재해 있는 것으로 보아 신석기 시대에서 금석병용기시대에 이르는 시기에서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원나라 지배 탐라총관부 시기 16개 속현 중에 호아현 지역이다.

한삼용 마을회장

마을 어르신들이 들려주는 설촌의 역사는 이러하다. 효돈은 쉐둔, 쇠둔이라고 지명으로 소를 키우던 곳이라는 의미에서 출발한다. 하효마을은 400년 전 고막곶이라고 하는 나무가 울창하던 곳에 농경지를 만들기 위하여 개간하면서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효돈천의 혜택을 누리며 살아온 마을이라는 것을 대부분 사람들이 강조하고 있다. 하류에서 바닷가와 만나는 쇠소깍으로 대표되는 지질학적 특징이야말로 자연자원의 가치를 심층적으로 느끼게 한다. 비교적 긴 하천이라고 할 수 있는 13km 효돈천은 산벌른내와 돈내코계곡을 아우르며 흘러와 쇠소깍에서 바다와 만난다. 수만 년 세월 동안 바위가 자갈이 되고, 자갈이 모래가 되어 바닷가에 쌓여서 파도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테우를 타고 쇠소깍을 즐기는 모습은 관광객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오늘날 수산업을 포함하는 도농복합지역의 성공적 모델로 부상하게 된 것은 자연자원 못지않은 인적자원에서 비롯하였음을 알 수 있다. 마을공동체 결속력이 미래지향적으로 작동하였을 경우 어떤 긍정적 시너지효과가 발생하게 되는지 입증 근거를 보여주는 마을. 신화적 사례가 있다. 1960년대에 마을 자체자금이 만들어지자 이 돈을 가지고 해안가에서 멀리 떨어진 상효동마을목장 지경에 있는 땅을 20만 평 넘게 사들이는 것을 결의한다. 거기에 편백나무를 심었는데 반백 년이 지난 지금 울창한 숲으로 변모해 있다. 힐링휴양림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엄청난 자원을 후손들이 보유하게 만든 것은 지금 노인회 어르신들이다. 미래 세대를 위하여 담대한 꿈을 현실로 만든 위대한 마을공동체 역량이다. 사람들이 모여서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서 운명이 창조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하효마을.

한삼용 마을회장에게 하효마을이 가지는 가장 큰 자긍심에 대하여 묻자 간명하게 대답했다. "우리 마을의 자부심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입니다. 전국 최고의 효(孝) 실천 마을공동체. 일주일에 6일을 700분의 노인회 어르신들에게 점심을 드리는 일. 부모님 세대의 고마움에 대하여 보답하는 마음."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금이 구축된다고 해서 실천할 수 있는 성질의 복지사업이 아닌 것은 작금의 세상물정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마을공동체 구성원들의 결속력이 가족과 같은 유대감으로 맺어지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 이러한 마을공동체 사업이 전통이 되어 대물림 된다면 '사람 사는 맛=하효'라는 등식이 성립될 것이기에 삶의 질에 대한 우월적 지위가 보장되는 마을이 될 것이 자명하다. 도시화 되는 농촌현실에서 농경사회의 아름다운 전통을 시대정신에 맞게 계승발전시키는 모델이다. 부모님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모시는 마음과 행동을 보며 자라는 아이들의 인성을 생각하면 참으로 행복한 실천이라 아니할 수 없다.

마을 한가운데 구룡못이라고 하는 못이 있었다. 큰 인물 아홉 명이 이 마을에서 태어난다는 소망이 깔린 전설. 꿈을 현실이 되게 하는 주민 모두가 그 아홉 용이다. 큰 인물이 따로 있으랴. <시각예술가>



4차선 대로변에서 만난 집
<수채화 79cm×35cm>


쉽게 만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서 그렸다. 마을 중심을 동서로 지나는 차로 버스정류장 인근에서 놀랍도록 평화로운 농가 주택을 먹구슬나무 녹음 짙은 여름날에 만났다는 자체로 의미가 있다. 도시기능을 보유한 농촌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원경에 살짝 등장하는 빌라 건물이다. 오래전에 저 집을 짓기 위하여 지형을 있는 그대로 활용하여 지었기에 블록 담장이 오르막을 타고 쌓아져 있다. 화면 구도에 감칠맛 나는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기에 더욱 매력적인 선택이라 할 수 있다. 8월의 태양을 받은 지붕 색이 찬연하다. 우리 제주사람들의 갈중이라는 감으로 물들인 그 색을 보유하고 있기에 초록과 보색대비를 이루리라 확신하여 화면에 가져온 것이다. 소박하면서도 정갈한 느낌의 집. 거기에 실용적인 담장. 교통량이 많아 쉬지 않고 자동차가 다니는 대로변에 상업건물이 아니라 평범한 주택이 정갈하게 자리 잡고 있을 수 있는 마을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하였다. 주변에 더 많은 등장 요소들이 있지만 면적 대비로 나무와 집이라고 하는 테마를 획득하기 위하여 평면화된 대비를 통해 주제의식을 더욱 부각시키고자 한 것이다. 광선의 강도가 강하면 강할수록 어두운 그림자 부분은 더욱 어둡게 느껴지는 것. 이 그림에서 얻고자 하는 빛의 요소는 삼복더위도 아랑곳하지 않을 저 나무 그늘에 방점이 찍혀져 있지 않을까? 오른쪽의 짙은 무게를 구부러진 담장이 평형을 시도하고 있어 탄력이다.



하효항이 미항인 이유
<수채화 79㎝×35㎝>


섬 제주의 어느 포구나 항구를 봐도 이러한 자연절벽이 그대로 보존된 친자연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 어떻게든 개발하여 자본주의 속성에 부합하는 행위를 저질렀을 것이다. 그러나, 하효는 다르다. 이렇게 다르다. 눈부신 여름 뙤약볕 아래 암반 절벽과 나무들, 그리고 넝쿨식물들이 자연스럽게 얽혀있는 모습을 연필이라고 하는 동일한 색으로 일체화 시키고 싶었다. 연필로 태양광선의 양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힘겨운 작업이기에 보람은 더욱 크다. 연필소묘라기보다는 단색화에 가까운 느낌을 얻고자 하였다. 하효항의 자연적 요소는 어떠한가. 해안은 분화활동으로 형성된 전형적인 화산지형이다. 개우지코지에서 하효항으로 이어지는 해안에는 그림과 같이 표고 10~15m의 절벽지형이 발달해 있으며, 파식대 일대에 침식되지 않고 남아있는 파식잔구가 출현하여 규모가 큰 것은 높이가 6m에 달한다.

미항의 개념이 어디에서 어디까지인지 모호하다. 사람들이 어떤 기준으로 받아들이는지 모르되 진정한 사회적 아름다움에서 비롯한 모습이 아닐까? 돈으로 살 수 없는 자연적 가치에 대한 마을공동체의 확고한 보존의지가 이를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저 풍경이 가능하도록 한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이 모여 아름다운 항구가 된 것이라 주장하고 싶어서 그렸다. 항구의 실용적인 지질자원이라고 할 수 있는 저 절벽을 그대로 간직하고자 한다면, 미항 맞다. 절벽 위에 있는 2개의 쉼터 정자에서 바라보는 항구와 모래해변이 더욱 미항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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