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묘왜변 제주대첩 망각에서 기억으로] (9)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②

[을묘왜변 제주대첩 망각에서 기억으로] (9)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②
수난에서 도전의 역사로… 대중 교육·기념사업 함께해야
  • 입력 : 2023. 08.29(화)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제주도교육청 초·중·고 제주이해교육에 제주대첩 포함을
관련 인물 전체 조명 위해 각계각층 참여 기념사업회 제안
선양 사업 등 제도적 뒷받침 별도 조례 제정 필요성도 제기

[한라일보] 화북포구, 별도연대, 별도환해장성, 큰이물(동선창), 해신사, 화북진성, 곤을동환해장성, 곤을동 4·3유적지, 사라봉수, 남수각 을묘왜변 전적지 표지석, 제주성지, 오현단, 제주목 관아 망경루. 제주시 화북동에서 삼도2동 제주목 관아까지 약 6㎞에 이르는 거리를 지나치는 동안 마주하게 될 역사적 장소들이다. 이곳을 관통하는 주요 키워드는 을묘왜변 제주대첩으로 직간접적으로 460여 년 전 이 섬에서 벌어진 사건들과 연관되어 있다. 제주도와 제주연구원이 '함께 걷는 치마돌격대 역사기행'이란 이름으로 이들 제주대첩 관련 장소를 스토리텔링으로 연결했던 때가 2021년 12월이다. 이에 더해 운주당지구 역사공원이 조성되는 등 제주대첩과 관련된 공간들이 늘고 있어서 이를 발판 삼아 대중 교육, 기념사업 등으로 확산하는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제주시 화북동 별도환해장성. 제주에서는 과거 왜구로 대표되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해안선을 따라 이 같은 환해장성을 쌓았다. 이상국기자

▶강의·현장 답사 '제주역사의 재발견' 대중 교육 예정="제주의 역사를 기념할 때 대개 수난사에 대한 접근이 주류를 이루다 보니 제주 사람들의 용기와 패기, 도전 정신을 보여줄 수 있는 역사에 대한 접근이 아쉬웠습니다." 제주연구원이 제주대첩 스토리텔링을 소개한 '치마돌격대-숨겨진 역사 유랑'을 펴내면서 책머리에 써놓은 글귀다. 이는 제주인들이 주도적으로 참전해 제주대첩이라는 승전보를 남겼지만 그동안 그 의미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2021년 출간된 박재형 작가의 동화책 '을묘왜변의 영웅, 김성조 장군'. 종친회 산하 건공장군현양추진위원회에서 이 책을 제주지역 모든 초·중학교에 보내 독후감을 공모한 일이 있다. 하지만 응모자가 거의 없었다. 김순택 추진위원장은 "을묘왜변 당시 건공장군 등을 보면서 패배 의식에 차 있지 말고 우리도 이길 수 있다는 정신을 길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학교마다 책을 전달했던 것"이라면서 "독후감 모집에 호응이 없었던 걸 보면 선생님들도 별 관심이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고 아쉬움을 보였다.

제주도와 제주연구원이 단행본으로 묶은 '을묘왜변과 제주대첩'(2022)에는 미래 세대에 제주대첩을 소개하는 방법으로 '제주이해(정체성)교육'을 꼽았다. 제주대첩이 제주인의 자긍심을 보여주는 승전의 역사인 만큼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해당 교육과정을 통해 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자는 것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제주인으로서 긍정적인 자아정체성을 확립하고 이를 기반으로 민주시민, 세계시민으로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일이 제주이해교육의 목표(2023 제주이해교육 활성화 시행계획)라면 제주대첩은 그에 맞춤한 정신을 끌어낼 수 있는 역사여서다.

제주연구원의 을묘왜변 제주대첩 도보 역사기행 지도 일부.

제주도교육청이 2015년 제정된 관련 조례에 따라 매년 시행계획을 세워 추진 중인 제주이해교육은 '제주의 역사를 기반으로 제주 지역 사회의 문화, 지리, 환경 등을 통해 지역 생활 공동체에 대한 이해를 중시하는 교육으로 제주 지역 사회를 중심 교재로 삼는 교육활동'을 일컫는다. 현재 초·중·고에서 학교별, 지역별 여건을 반영해 시행하고 있는 제주어, 제주항일운동, 제주4·3, 해녀, 제주생태환경교육 등이 이에 해당한다. 교육감은 각급 학교에서 제주이해교육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하도록 했다.

대중 교육의 일환으로 제주연구원에서는 올가을에 '제주역사의 재발견-을묘왜변 제주대첩'(가제) 강좌를 운영한다. '왜구란 무엇인가', '을묘왜변 제주대첩의 주역들', '전쟁과 역사문화자원화' 등의 주제 강의와 함께 2년 전 개발한 스토리텔링 장소들을 현장 답사하는 일정을 계획 중이다.

▶정신 계승 방향·실행계획 동력 제공할 조례안 검토=기념사업회 구성, 관련 조례 제정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있다. 제주도와 제주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내놓은 '건공장군 김성조 문화원형 및 콘텐츠 발굴' 최종보고서에서 연구진은 "을묘왜변 제주대첩의 의미와 관련 인물 전체에 대한 조명을 위해서는 제한적인 건공장군현양추진위원회보다는 가칭 '을묘왜변 제주대첩 기념사업회'로 구성하는 것이 맞다고 사료된다"는 의견을 밝히며 시민들의 자발적 모임을 통한 법인 형태의 기념사업회를 제안했다. 또한 "을묘왜변 제주대첩은 고난과 역경의 섬으로 알려진 제주지역에서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군관민이 합심해 적을 물리친 흔치 않는 사건임으로 마땅히 그 의미를 오늘에 되살"리자면서 "이를 위해 조례라는 제도로 정착시켜 정신 계승 방향과 실행계획 등을 논의하고 사업으로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별도환해장성 인근 별도연대. 대개 해안 고지대에 들어섰던 연대도 환해장성처럼 외침에 대비한 방어 유적 중 하나다. 이상국기자

1555년 제주대첩 직전에 전남 영암에서 일어난 을묘왜변을 승리로 이끈 '조선 최초의 의병장 양달사'를 기리는 사업을 열정적으로 이어오고 있는 양달사현창사업회의 이영현 사무국장은 기념사업이 확산되려면 각계각층의 참여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이영현 사무국장은 "몇몇 인사 위주로 움직이면 그 단체가 오래가지 못한다"며 양달사현창사업회와 별개로 영암군 각 읍면 청년들이 주축이 된 '영암성대첩기념사업회'가 꾸려진 것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조례 제정은 제주대첩에서 활약한 인물들의 면면을 살피고 숭고한 뜻을 기억하는 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으로 제시됐다. 앞서 언급한 최종보고서에 실린 조례상의 선양 사업은 관련 자료 발굴과 육성, 기념물과 안내판 제작·설치, 기념·추모 행사, 관련된 역사인물에 대한 교육·홍보, 정신을 계승하고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한 기념관 건립 등이 있다.

이와 관련 제주도의회 김기환 의원(더불어민주당, 제주시 이도2동갑)이 가칭 '을묘왜변 제주대첩 기념 지원에 관한 조례안' 입법을 검토하고 있다. 조례안에는 제주도지사가 제주대첩의 정신과 가치를 계승·발전시킬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고 이를 위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조항 등이 담길 예정이다. 김 의원은 "을묘왜변 제주대첩의 의미와 가치를 도민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한 사업을 진행하려면 근거가 될 조례가 있어야 할 것"이라며 "다만 특정 역사적 사건에 대한 조례 제정을 놓고 이견이 있어서 조만간 토론회를 거치는 등 공감대를 넓히면서 조례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제주연구원·제주도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9106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