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묘왜변 제주대첩 망각에서 기억으로] (10)제주대첩의 지속성을 위해

[을묘왜변 제주대첩 망각에서 기억으로] (10)제주대첩의 지속성을 위해
섬 공동체가 거둔 승전사 제주 주체성 알리는 중요 자원
  • 입력 : 2023. 09.12(화)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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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사람들 기개와 일체심 제대로 보여준 역사적 사건
제주인 정체성 섬 안팎과 만나고 부딪히며 역동적 형성
468년 전 제주대첩 통한 제주정신 본격 탐색 작업 필요




[한라일보] "날이 밝아왔다. 사라오름 위로 개밥바라기별(샛별)이 한층 밝은 빛을 내고 있었다. 이제 아침이 성큼성큼 다가올 것이다. 인시(오전 3시 반~4시 반)가 되자 날밤을 새운 기마별동대와 효용군은 관덕정 광장에 모였다. 모두들 얼굴에는 비장한 각오가 비쳤다. 왜구를 물리치지 못하면 제주성뿐만 아니라 제주도가 적의 수중에 넘어갈 것이다." 박재형 작가가 을묘왜변 제주대첩을 아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쓴 동화 '을묘왜변의 영웅, 김성조 장군'(2021)에는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이기 직전의 모습이 이렇게 그려졌다. 등장인물들은 "사랑하는 가족과 제주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게 하려면 무조건 왜구를 물리쳐야 할 사명"이 있다며 "일당백의 정신으로 싸우러" 나간다.

제이각에서 바라본 제주시 원도심 제주성지. 을묘왜변 제주대첩의 배경이 된 장소 중 하나다. 이상국기자



지금으로부터 468년 전인 1555년(명종 10). 이 시기를 건넜던 제주 사람들은 섬을 뺏기지 않기 위해 몸을 내던졌다. 그 전후로도 숱한 싸움들이 있었지만 제주대첩은 제주역사상 드문 승전보를 남겼다. "적은 병사로 많은 적을 격파"했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처럼 수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거둔 승리였다. 그날은 잊혔지만 제주성지, 명월성지, 별방진 등 제주 동서남북 곳곳에 남아 있는 방어유적은 잊어선 안 될 정신이 있음을 일깨운다.



▶지역 정체성, 제주정신 논의에서 빠졌던 제주대첩=제주대첩에 앞서 전남 영암에서 일어났던 을묘왜변에는 양달사가 있었다. '을묘왜변을 승리로 이끈, 조선 최초 의병장 양달사를 찾아서'란 문구가 달린 이영현의 역사소설 '바람벽에 쓴 시'(2020)에는 적진으로 뛰어들기 전 주인공이 "칼을 힘차게 빼들고 성난 맹수처럼 소리를 내질렀다"는 장면이 나온다. "만일 지금이라도 놈들이 무서워 도망가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 어둠 속으로 숨으시고, 왜놈들이 없는 밝은 세상에서 살고 싶다면 사즉생의 결의로 주저 없이 나를 따라오시기 바랍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운다면 반드시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관은 '임진왜란과 호남의병에 대한 새로운 관점'(전북대 인문학연구소, '건지인문학' 제33집, 2022)에서 을묘왜변의 양달사로 시작해 선구자적 정신으로 일으킨 의병 정신이 후대로 이어지며 "한민족 역사의 정신적 본류"가 되었다는 견해를 드러냈다. "1919년 3·1운동, 1929년 11·3 광주학생운동, 1960년 4·19혁명, 1980년 5·18민주항쟁으로 발현"되는 등 "호남의병은 임진왜란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 역사가 불의와 외세 속에서 빛을 잃어갈 때 햇불처럼 일어나 의(義)의 정신을 밝혀"왔다고 했다.

같은 해 제주대첩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아쉽게도 지역 정체성, 제주정신을 논할 때 제주대첩은 빠져 있었다. 제주도청 홈페이지의 제주역사, 인물 등을 간략히 소개하는 장에도 제주대첩은 찾아보기 어렵다.

제주시 한림읍의 명월성지는 조선시대 제주목 서쪽에 있던 큰 진(鎭)이었다. 이상국기자

고충석의 '21세기 제주발전의 이념 정립에 관한 연구'(제주발전연구원, 2000)에 따르면 1979년 제주도 의뢰로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소가 '탐라정신 연구'를 수행했다. 연구진이 제시한 '탐라정신'은 삼다(三多)에 대처해 이를 극복한 자강불패(自彊不敗)의 삼무(三無)정신이었다. 주지하다시피 이는 각급 학교를 통해 교육 현장에 전파됐고 제주도의 '세계평화의 섬 지정 선언문'에도 담긴다. "대한민국 정부는 제주도가 삼무정신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제주4·3의 비극을 화해와 상생으로 승화시키며 평화 정착을 위한 정상외교의 정신을 이어받아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제주국제자유도시 특별법 규정에 의해 제주도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한다."

고충석은 "애초에 '삼무'는 외지인이 타 지역과의 상대적인 비교를 통해 제주를 바라본 특징적인 현상으로 '정신'이란 낱말과 결합될 수 없는 형용의 모순이었다"며 "도둑과 대문과 거지가 없었다는 건 극심한 궁핍과 육지부에 비해 빈부 격차의 상대적인 약화에서 나온 자연스런 현상"이었을 뿐 무슨 무슨 정신으로 지칭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불의한 외부 세력의 핍박과 수탈에 맞서 제주 공동체를 보위해 온 집단적 자의식, 신화시대 이래 제주정신의 원류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제주인의 공동체 의식, 급속한 세계화가 진전되는 속에서도 자신의 문화적·경제적 주체성을 상실하지 않으려는 당대 제주 주민의 집단적 자의식 속에서 '공동체적 자주·자립정신'을 추론해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기억하고 기념하며 미래 제주가 나아갈 길 모색을=최근 몇 년 사이에 제주대첩의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잇따르고 있다. 푯돌, 기념비와 같은 조형물 설치만이 아니라 문학작품 발간, 세미나, 연극 등 여러 형식으로 제주대첩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관심을 높여 왔다.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에 있는 별방진. 이상국기자

그동안 제주대첩에 대한 조명이 사실상 멈춰 있었던 걸 감안하면 비교적 짧은 기간에 다양한 활동이 추진됐다. 기왕의 연구를 바탕으로 제주대첩이 전하는 제주정신을 들여다보는 작업도 동반돼야 할 것이다. 제주대첩이 제주 사람들의 마음 안에 살아남으려면 그 정신이 오늘날 우리의 삶과 닿아야 한다.

김치완은 '제주 정체성과 근대성에 대한 철학의 문제들'(동국대 동서사상연구소, '철학·사상·문화' 제34호, 2020)에서 "제주의 정체성, 곧 탐라 천년과 제주 천년에 이어 오늘날까지 유지하고 있는 동일성은 도서국가로서의 독자성과 변방으로서의 부속성이 교직되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제주대첩이 "일본과 한반도, 중국과 연결되는 해상 요충지 제주를 왜구로부터 지켜냈다는 점에서 당시 동아시아 평화 정착에 큰 기여를 했다"(홍기표)고 한다면 제주정신의 본격적 탐색을 위해 약 500년 전으로 거슬러 가야 할 것이다.

제주대첩의 역사문화자원화 연구 등을 펼쳐온 제주연구원의 현혜경 부연구위원은 "을묘왜변 제주대첩은 제주민의 기개와 일체심을 제대로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라면서 "섬 제주 사람들의 정체성이 섬 밖 사람들, 세력과의 역학 관계 속에서 역동적으로 만들어져 왔다"고 말했다. 특히 현혜경 부연구위원은 "승전사인 을묘왜변 제주대첩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일은 현재와 미래 제주 사람들의 공동 신념과 주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자원"이라고 강조했다.<끝> <이 기사는 제주연구원·제주도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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