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55] 3부 오름-(14)지미봉은 아이누어, '작은 말미오름'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55] 3부 오름-(14)지미봉은 아이누어, '작은 말미오름'
종달과 지미는 같은 말, 고구려어와 아이누어 기원
  • 입력 : 2023. 09.19(화) 00: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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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따라 바뀌어온
지미오름의 이름


[한라일보] 지미봉은 지미오름이라고도 한다. 이 오름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432년 세종 14년 편찬한 ‘세종실록지리지’일 것이다. 여기에는 지말산(只末山)으로 나온다. 다음으로는 1439년 ‘세종실록’에 같은 지명으로 나온다. 1530년에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같은 지말산(只末山)으로 나온다. 이런 정황으로 보면 조선 초 15~16세기에는 지말산(只末山)으로 썼음이 확실하다.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 제주목 편엔 지미산(只未山)으로도 표기하여 변화를 엿볼 수 있다.

북쪽(토끼섬)에서 바라본 지미오름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1653년 ‘탐라지’에는 지미산(指尾山)으로 나오는 것이다. 1656년 ‘동국여지지’, 1853년부터 1856년 편찬한 ‘여도비지’, 1864년 김정호의 ‘대동지지’에도 지미산(指尾山)으로 나온다. 그 중간 시기인 1696년 ‘지영록’에는 지미봉(指尾峰)이라 한 적이 있다. 1899년에 ‘제주군읍지’에 지미산(地尾山)으로 나온다. 1703년 ‘탐라순력도’에 지미망(指尾望), 1709 '탐라지도병서’에 지미봉(指尾烽)이라 표기했다. 이 기록들은 오름에 봉수가 있어서 '망' 또는 '봉(烽)'자를 덧붙였다. 1910년경 ‘조선지지자료’에 지미봉(地尾峰)으로 기록한 이래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명칭의 변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지말산(只末山; 1432년) → 지미산(只未山; 1530) → 지미산(指尾山; 1653년) → 지미봉(指尾峰; 1696) → 지미산(地尾山; 1896) → 지미망(指尾望; 1703) → 지미봉(指尾烽; 1709) → 지미봉(地尾峰; 1910).



최초의 기록 지말산(只末山),
지미산(只未山)의 오기가 아니다


이 지명은 지말산(只末山)과 지미산으로 나눌 수 있다. 지미산은 다시 지미산(只未山), 지미산(指尾山), 지미산(地尾山) 등으로 압축된다.

종달리에서 바라본 말미오름

지미산의 표기를 볼 때 어떤 특정한 뜻을 표현했다기보다 발음을 한자로 표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지말산(只末山)은 좀 이질적이다. 이에 대해 어느 연구자료에는 지미산(只未山)의 오기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점은 지말산(只末山)이라는 지명은 1432년 편찬한 ‘세종실록지리지’에 2차례, 1439년 ‘세종실록’에 1차례, 1530년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3차례 등 여섯 차례나 나온다. 이 기록들은 한 글자라도 틀리면 안 되었던 지엄한 문헌들이다. 또한, 이 당시까지는 그 어떤 형태의 '지미'라는 지명도 출현하기 전이다. 그런데 어떻게 지미산(只未山)이라고 쓴다는 것이 그만 깜박하여 지말산(只末山)으로 썼다는 것인가. 과연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 쓴 역사서에서 연달아 여섯 차례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지미오름에서는 우도가 보이고, 멀리 일출봉이 웅장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가장 가까운 오름은 두산봉이다. 이 오름은 말미오름이라고도 한다. 1653년 ‘탐라지’에는 두산(斗山), 1899년 ‘제주읍지’에는 두산악(斗山岳)이라 나온다. 1703년 ‘탐라순력도’에는 두산(斗山)이라 했고, ‘제주군읍지’에는 마악(馬岳)이라 했다. 말미오름이란 마르오름이란 뜻으로 위가 평평한 지형이나 산을 제주도에서는 흔히 마르라 한다.

두산(斗山)이라는 지명도 두(斗)라는 한자가 말 두이고, 산(山)은 산을 의미하는 미 혹은 메에 대응하므로 '말미'를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마악(馬岳)의 마(馬)는 말 '마'자, 악(岳)은 오름을 나타내므로 역시 '말미'를 나타낸다. 여기서 마(馬) 자를 쓴 것은 이 글자의 훈 '말'을 쓰려고 한 것이다. 훈가자다. 즉, 고대인들이 마르 혹은 마르오름이라고 하는 것을 한자로 적은 것이다. 그러므로 말산(末山)의 말은 미(未)의 오기가 아니라 뜻을 버리고 음만 취한 글자 즉, 음가자로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역시 마르오름의 뜻이다.

지미오름을 지말산(只末山)이라고 표기한 1530년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말산(末山)이라고 되어있다. 여기에는 '지말산(只末山) 현 동쪽 35리에 있다. 말산(末山) 현 동쪽 27리에 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만약 지말산(只末山)이 지미산(只未山)의 오기라면 말산(末山)도 미산(未山)의 오기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말산은 말미(마르오름)를 쓴 것이므로 오기라고 볼 수 없다. 여기서 지말산은 말산과 대립개념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말산이 아니라 지말산'임을 지시하려고 지은 이름이라는 것이다.



'지미'는 아이누어 작은 산의 뜻


과연 이 지말산의 '지'가 무슨 뜻인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길래 只(지), 指(지), 地(지) 등으로 여러 가지로 쓰게 되었나? 높이는 지미오름이 165.8m로 말미오름 145.9m에 비해 높다. 그러나 면적은 지미오름이 42만3814㎡인데 비해서 말미오름은 면적 92만4938㎡로 훨씬 넓다. 지미오름은 분석구인데 비해 두산봉은 응회환으로 남쪽 사면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형성하여 산악의 모습을 보인다. 이런 점에서 고대인들은 말미오름을 큰 산으로 본 것 같다. 이에 비해 인접해 있으면서 면적도 작은 지미오름은 이와 대립적으로 볼 때 작은 오름으로 본 것이다. 지미오름 역시 위가 평평한 마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전문가)

'지'라는 말은 아이누어에서 '작은'을 의미한다. 일본어 '작다(小)'의 '지이(ちい)'도 어원을 공유한다. 제주도 지명에 '지' 지명소가 많이 쓰인다.

결국, 지미산, 지미봉, 지미오름은 '지+미+산, 봉, 오름'의 구조다. 산, 봉, 오름은 같은 말로서 산을 나타내는 고어 '미'에 덧붙은 말이다. 오히려 '지말미'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점차 '지미'가 되었고 이게 다시 산, 봉, 오름이 덧붙게 되었다,

지미오름은 '작은 말미오름'이라는 뜻이다. '종달' 역시 '작은 오름'으로 같은 뜻이다. 다만 '종달'이 고구려어 집단이 부른 이름이라면 '지미'는 아이누어를 쓰는 집단이 부른 이름이다. 같은 오름에 두 언어집단의 흔적이 남아 있는 특이한 경우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전문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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