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단편 '몸값'과 장편 '콜'로 주목받은 이충현 감독의 신작 '발레리나'는 경호원 출신 옥주가 소중한 친구 민희를 죽음으로 몰아간 최프로를 향하는 추적극이자 복수극이다. 93분이라는 길지 않은 러닝타임 내내 군더더기 없이 오직 추적과 복수에 집중하는 이 작품은 단순하고 명료하다. 세상의 악인들을 처벌하기 위해 조금도 망설이지 않는 옥주의 질주가 거침없이 펼쳐진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몽환적인 화면과 큰 갈등 없이 뻗어나가는 스토리 전개는 일부 관람자들로부터 개연성이 없다는 평을 듣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악을 대하는 방식은 선언적 일정도로 심플하다. 어떤 악도 현실적이지도 개연성이 있지도 않다는 것, 그 설명할 수 없고 설명하기도 싫은 악인들에게 어떠한 것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결의마저 느껴지는 선택이다. 주인공 옥주 역할을 맡은 배우 전종서가 이 결의를 온몸에 문신처럼 새긴다. 사실상 원톱 히어로 장르에 가까운 영화 '발레리나'에서 전종서는 특유의 뉘앙스로 복수심에 불타는 옥주를 그려낸다. 감정에서 발화해 온몸으로 전이되는 불길을 그대로 두는 그는 기꺼이 타오르고 주저 없이 번진다. 생에 다시는 없을 것처럼, 마지막처럼.
이창동 감독의 '버닝'으로 데뷔해 전 세계 평단과 관객의 주목을 받은 배우 전종서는 이후 영화 '콜'과 '연애 빠진 로맨스', 해외 작품인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 시리즈 '종이의 집'과 '몸값'을 선보였다. 필모그래피의 수는 많지 않지만 아트 필름과 호러, 로맨틱 코미디, 액션과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해 온 그는 짧은 기간 안에 연기력과 스타성 모두를 입증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확고히 하고 있다. 전종서의 매력은 무엇보다 생기와 살기 사이를 넘나드는 강렬함에 있다. 호기심과 적의를 감추지 않는 눈, 한참을 머금고 있다 내뱉는 직설적인 말투, 주저 없이 방향을 향해 움직이는 몸으로 그는 생에 대한 의지와 죽음이라는 미지수 사이를 큰 보폭으로 오갔다. 세기말의 허무와 전장의 생존 본능을 동시에 보여주는 전에 없던 형상의 배우가 전종서다. '버닝'에서 마치 자연의 한 부분인 것처럼 몸을 움직이던 이는 '콜'에서는 죽음의 사자인 것처럼 마주하는 모든 것에 균열을 일삼았고 '연애 빠진 로맨스'에서 생생하게 육화된 싱싱한 욕망을 내밀던 그는 '몸값'에서는 시험대 위에 올려진 육체성의 한계를 끝까지 밀어붙였다. 현실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현실 너머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경계 없는 매력 또한 그의 큰 장점이다. 데뷔작 '버닝'에서부터 신작 '발레리나'에 이르기까지 머리를 굴리거나 좋으면서 아닌 척하는 것은 그에게 없다. 이를테면 클리셰를 돌파하는 영화 그리고 캐릭터와 궁합이 잘 맞는 그는 솔직함과 당당함으로 전형을 가뿐하게 넘어서는 이다.
'버닝'의 신비로움, '콜'의 기괴함, '연애 빠진 로맨스'의 솔직함 그리고 '몸값'의 처절함에 이어 '발레리나'의 전종서는 누구보다 고독하고 강렬한 단독자를 택했다. '발레리나'에서 전종서는 입보다는 눈으로 먼저 말한다. 예기치 못한 비극 앞에서 무너지는 눈, 복수를 결심하며 부릅뜨는 분, 끔찍한 실체를 목격하고 흔들리는 눈과 복수의 대상을 조준하며 호흡을 고르는 눈까지 옥주를 연기하는 전종서의 눈은 수많은 감정과 무수한 이야기들을 담아낸다. '발레리나'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보다는 감정을 보여주는 쪽을 택한 영화다. 그래서 장면들은 다채로운 색감으로 인물들의 감정을 나눠가지고 음악은 말 없는 인물 대신 진동한다. 이 과감한 선택을 지루하지 않게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이 또한 배우 전종서다. 해야 할 말을 머금고 있는 그 입을 열지 않고도 눈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설득하는 배우, 기꺼이 숨을 참고 포박을 견디게 만드는 배우. 그가 곧 우리를 어디론가로 데려가 줄 것을 믿기 때문에, 전종서라는 배우의 실행력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기다림은 그렇게 기꺼이가 된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