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지금 이 순간에 내 목소리는 전 세계 수백만 사람들, 절망에 빠진 수백만 남녀노소들과 죄 없이 고문당하고 투옥되는 체제의 희생자들의 귀에 닿을 것입니다. 내 말을 듣고 있을 사람들에게는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절망하지 맙시다.' 우리에게 닥친 불행은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결과이며, 인간의 진보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빈정거림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간의 증오는 사라질 것이고, 독재자는 죽을 것이며, 그들이 국민에게서 빼앗은 권력은 국민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인간이 결국 죽어야 하는 존재인 한, 자유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절망하지 말라'는 이 외침은 찰리 채플린의 영화 '위대한 독재자'의 마지막 장면인 오스트렐리히 합병 기념연설의 일부다.
연설의 주인공은 독재자 힌켈로 오인 받은 이발사 찰리였다. 외모가 빼닮았다는 설정으로, 채플린은 두 인물을 혼자서 연기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희극 배우와 가장 미움 받는 독재자의 모습이 닮았다는 짓궂은 이 시나리오는 독재자 히틀러를 풍자하기 위한 장치였다. 또 한편 영화제목을 독재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위대한(Great)'이란 수식어를 붙여 형용모순을 만들었다.
독재자에게 가장 대표적인 병증은 오만 증후군이다. 오만함이라는 자아팽창은 시쳇말로 '간이 부었다'는 말이다. 이 병은 증세가 갈수록 악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결국은 사이비 교주의 심리와 비슷해지고 국가를 자기 소유물로 착각하게 된다.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인 홍성남 신부는 이러한 독재자의 심리를 여섯 가지 단계로 풀어낸 바가 있다. 첫 번째,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착각해 귀를 막고 눈을 감는다. 두 번째, 편집증적 망상이 심해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적으로 간주해 제거한다. 세 번째, 자신을 국가와 동일시하거나 국가가 개인 자산인 양 착각한다. 네 번째, 국민을 획일화하고 싶어 한다. 다섯 번째, 국민을 노예화하고 싶어 한다. 여섯 번째, 자신을 신격화한다.
독재체제는 사회의 모든 분야에 심각한 상처와 후유증을 남긴다. 독재자의 명령을 수행하는 집단은 정치적 이해를 같이하는 하수인들뿐만 아니라 평범한 시민일 수도 있다. 유대인 학살의 주범인 아이히만의 재판을 취재하고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한나 아렌트는 독재정치라는 죄악의 근원은 '악마성'이 아니라 '악의 평범성'에 있다고 주장했다. 모범적인 시민조차도 어찌하여 독재체제에 순응하고 열광하는가? 아렌트가 찾은 답은 시민의 사고력 결여, 즉 무사유(無思惟)였다.
대한민국의 험난했던 민주화 여정은 불의한 국가권력을 타도해 온 역사이다. 압수수색으로 표현되는 이 나라의 검찰독재를 바라보며 마냥 웃을 수 있을까? 절망하지 않으려면 풍자만평이라도 찾아 웃고, 윤민석의 '헌법 제1조'를 노래하자. 민주공화국은 모두에 의한 국가, 모두를 위한 국가이다. 채플린은 말했다, "웃음없는 하루는 낭비한 하루"라고. <김양훈 프리랜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