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우리들은 어디에서 볼 것인가

[영화觀] 우리들은 어디에서 볼 것인가
  • 입력 : 2023. 11.03(금) 00:00  수정 : 2023. 11. 05(일) 17:58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영화 '버텨내고 존재하기'

[한라일보] 지난 10월 강원도 원주 아카데미 극장이 강제 철거되었다. 1963년 세상에 태어났으니 올해로 환갑을 맞은 극장에게 잔치를 열어 주기는커녕 원주시는 강제, 무력 철거를 통해 역사를 무너뜨렸다. 결코 짧지 않은 생을 마감한 극장은 원주 아카데미를 사랑했던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여전히 남아 있겠지만 참혹하고 무지한 행정이 남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는 복구할 방법을 영영 잃고 말았다. 아카데미의 왕좌를 거머쥔 K-시네마의 신화가 여전히 회자되는 2023년의 일이라는 것이 믿을 수가 없는 참사다.

팬데믹 이후 헌국 영화 산업의 위기라는 말이 연일 터져 나온다. 고점을 찍은 후 곤두박질친 극장 관객 숫자는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텅 빈 극장을 유지하기 위해 영화 관람료는 몇 년 전과 비교해 체감할 정도로 상승했다. 수많은 관을 거느린 거대한 크기의 멀티 플렉스 로비는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경우에는 한산하기 그지없다. 독립예술영화관의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다. 10여 년 전과 비교하면 극장의 숫자도, 좌석의 숫자도 모두 줄었다. 다시 말해 꺾이지 않고 성장해 온 영화 산업 전반이 전과 같지 못한 것이다. 뜨겁던 관객의 애정이 식은 것인지, 한국 영화 산업 종사자들의 열정이 예전만 못한 것인지 뜨뜻미지근한 정도를 넘어서 차갑게 느껴질 정도의 온도다. 팬데믹 이후 급상승한 OTT의 영향도 있을 테고 양질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공급받지 못한 관객들의 실망감도 한몫했을 것이다. 오랫동안 극장은 대중들의 여가를 책임지는 놀이터였다. 극장이라는 공간에 간다는 것이 들뜬 기분을 만들게 하는 나들이였고 극장에 가기로 마음을 먹는 일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단 몇 시간이라도 다른 문을 열게 하고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하는 체험의 기쁨을 기대하는 순수한 설렘의 행위였다.

그런데 이제 많은 이들이 극장을 감정적인 공간보다는 감각적인 측면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제 관객들은 극장을 콘텐츠를 공급하는 하드웨어로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닐까. IMAX난 4DX 같은 보다 본격적인 기술적 체험이 주는 쾌감을 원하는 관객들의 수요는 '아바타' 이후 꾸준히 테크놀로지의 체험을 예술적 영역으로까지 끌어올린 양질의 콘텐츠들 덕에 가능했다. 극장 또한 이러한 수요에 빠르게 대응해서 더 크고 더 또렷하며 더 확실한 시청각적 쾌감을 두는 공간의 구축에 힘써왔다. 그러는 사이 극장이라는 공간은 상업적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확고히 하며 발전해 왔다. 이제 복합쇼핑몰에 위치하지 않은 극장을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장의 외관은 사라져 버렸다.

분명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은 필요하고 중요한 일일 것이다. 모든 지나간 것들이 그저 아름다울 리도 만무하다. 그러나 새롭지 않은 것들이 덜 필요하고 덜 중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극장은 번거로움을 필수적으로 수반해야 하는 공간이다. 집 밖으로 나서야 하고 기다려야 하며 돌아와야 하고 떠올려야 한다. 이 모든 순서들이 맞물려 관람이라는 행위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집 소파에 누워서 리모컨을 통해 영화를 빨리 감고 멈추는 관객들은 어느덧 관람의 행위를 신처럼 조율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영화가 가진 고유한 리듬은 뒤엉켜질 수밖에 없고 공들여 편집한 장면들은 난도질당한다. 감각을 자극하지 못하면 지루한 뇌절이 되고 예상보다 스펙터클한 영화를 만났을 경우 모니터의 크기를 키우는 쪽의 개선을 택한다. 속도와 가성비의 시대에 영화는 그렇게 자신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않은 이들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는 중이다. 비단 관객의 각성만이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극장이라는 공간이 가진 매력을 기술력으로만 대체해 온 멀티 플렉스들의 미시적 변화 또한 그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러한 악화를 구축한 것은 영화 산업을 세계시장에 내보낸 오디션 참가자처럼 보고 있는 국가의 문화 정책의 영향이 클 것이다. 더 크고 번쩍이는 트로피에 환호하고 축배를 드는 일은 생각없이 취하는 것처럼 쉽다. 또한 관객의 숫자만을 기록하는 언론의 역할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다.

성과와 성취에 취해있는 지금의 한국영화산업에서 상영을 멈춘 단관 극장의 철거는 크게 가시화되지 않는다. 짜릿하게 오감을 자극하지 않기 때문이다. 11월의 첫날 전라도 광주에 위치한 국내 최대 규모의 단관 극장은 광주 극장에서 만들어진 영화 '버텨내고 존재하기'가 개봉되었다. 극장이라는 공간을 사랑한 음악인들이 크고 오래된, 낡고 아름다운 극장을 자신의 목소리로 채워가는 영화다. 떠다니는 공간의 먼지들이 음악에 맞춰 조용히 춤을 추고 세월이 앉았다 간 의자를 뮤지션들이 기꺼이 무대로 쓰는 영화다. 이러한 감흥은 기술력으로는 만들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아주 빠른 시간 안에 겨우 지금과 미래의 시간만을 보고 살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유행에 맞춘 팝업 스토어로 과거를 그저 전시하고 기분에 따라 소비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무너진 것을 세우는 일, 뿌리 뽑힌 나무를 키우는 일에는 우리가 보지 않고 있는 과거, 세월의 묵묵한 마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부디 더 이상 무너뜨리는 일이 무너지는 일임을 모르지 않기를 바란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783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