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선한 사람들의 선한 이야기

[열린마당] 선한 사람들의 선한 이야기
  • 입력 : 2023. 11.27(월) 00: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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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성산읍 수산에 있는 조그만 책방에서 김다운 감독의 영화 '우리가 살아가는 숲이에요'를 상영한다는 말을 듣고 길을 나섰다. 길가와 오름 주변에는 늦가을의 억새가 피어 있었다. 수산리 가는 길에는 이 번 영화의 소재인 비자림로 확장 공사가 한창이었고, 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제2공항 반대의 깃발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처음 길이라 잠시 헤매었지만, 다행히 시간에 알맞게 도착하였다.

영화의 주된 모티프는 합창이다. 합창은 우연히 비자림로 소식을 들은 시민에 의해서 기획되었다. 이 영화는 여러 사람들의 인터뷰로 구성되었는데, 비자림로 현장에 모인 사람들이 노래하고 춤추며 한껏 고조된 상태로 끝을 맺는다. 합창의 구성원들은 다양하다. 각자는 자신만의 리듬을 타면서 노래를 부른다. 각자의 리듬은 함께 부르면서 공명되고 증폭된다. 보다 큰 연대의 리듬을 형성하게 된다.

인터뷰에 참가한 사람들은 비자림로 확장 공사에 대한 각자의 경험과 주장을 얘기한다. 숲에 살고 있는 멸종 위기의 생물로부터 우리에게 필요한 약물을 얻을 수 있다는 생물학자의 얘기도 있고, 기후 위기를 말하는 학생의 외침도 있다. 인상적이었던 인터뷰는 제주로 이주한 작가의 이야기이다. 옆에서 시민운동을 지켜보기만 했던 그녀는 예전에 살았던 도시 빈민촌의 체험이 떠오르면서 이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예술가로서 그녀는 숲과 나무를 그리고 시를 쓰면서 자신이 치유되는 경험을 느꼈다고 한다.

영화에는 극적인 사건의 전개나 갈등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합창이라는 사건과 관련자의 인터뷰가 이 영화의 전부이다. 인터뷰의 장점은 당사자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다는 데 있다. 비자림로 확장과 관련된 사건들은 전국적인 뉴스가 되기도 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몇 줄의 기사로 소비되었다. 인터뷰는 이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의 움직임을 깊이 있게 보여준다. 잊히고 사라질 뻔한 소중한 순간들을 이 영화는 담아내고 있다.

이 시민운동은 실패한 것인가. 한 시민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봐봐 활동을 통해서 바꿀 수 있는 게 없잖아……, 그런 태도는 정말 우리 활동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거라 생각하고, 미안한 마음이 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비자림로를 보내줬다라는 생각은 들어요. 우리한테는 비자림로가 끝이 아니잖아요." 비자림로에 대한 법정 소송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 영화는 감독의 첫 작품이라고 한다. 미흡한 점이 보이지만, 감독이 세상을 보는 시선을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다큐멘타리의 형식을 통해 제주에서 진행된 시민운동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다. 개발과 환경의 문제에 대해서는 지역 주민의 구성원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사태가 복잡한 만큼 구조적 문제에 대한 천착과 비판적 시각이 필요하다. 보다 긴 호흡의 영화 형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환경을 소재로 하는 좋은 작품들을 발표해 줄 것을 신인 감독에게 기대해 본다.<양철수 인문예술연구소 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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