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범의 허리
  • 입력 : 2024. 03.22(금) 00:00  수정 : 2024. 03. 22(금) 20:35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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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정순'.

2024년 첫 천만 영화를 가시화하고 있는 영화 '파묘'에서 가장 널리 회자되는 대사 중 하나는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이다. 풍수지리적으로 중요한 백두대간의 맥을 끊은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는 '파묘'의 메시지를 그대로 농축한 대사다. '파묘'의 후반부에는 호랑이를 닮은 배우 최민식이 온몸을 던져 맥을 끊은 이들과 사투를 벌인다. 배우의 전작 '대호'와 '명량'이 설핏 스쳤고 배우가 몸에 새긴 역사가 한 편의 작품에서 얼마만큼 복합적인 뉘앙스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감탄할 수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호랑이를 닮은 배우가 또 있다. 흥미롭게도 '파묘'를 연출한 장재현 감독의 전작 '사바하'에서 무당 역할을 맡았던 배우 김금순이다. 김금순은 최근 플랫폼을 넘나들며 가장 활발한 활동을 선보이고 있는 중견 배우다. 지난해 유재선 감독의 영화 '잠'에서도 숏컷에 가죽 재킷을 입은 무당 역할로 등장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도 전고운, 임대형 감독의 시리즈 'LTNS'에서는 이학주 배우의 불륜 상대로 깜짝 등장, 예기치 못한 웃음을 선사한 바 있다. 올 상반기는 김금순 배우가 주연을 맡은 독립영화 2편이 나란히 개봉한다. 지난 1월 개봉한 영화 '울산의 별'은 202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김금순 배우에게 올해의 배우상을 안겨준 작품이고 오는 4월 개봉을 앞둔 '정순'은 2022년 전주국제영화제 대상 수상작이자 로마국제영화제에서 김금순 배우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두 편 모두 일하는 여성이자 한 가족의 중심인 배우 김금순의 캐릭터가 동력이 되는 작품들이다.

'정순'의 김금순은 노동자다. 식품 공장에서 일하는 정순은 공장 동료와 연애를 시작한다. 그리고 상대는 정순과의 은밀한 순간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정순'은 중년 여성을 주인공으로 디지털 성범죄를 현실적이고 섬세하게 그려낸 영화다. 영화의 타이틀 롤을 맡은 배우 김금순은 감정의 진폭이 큰 캐릭터인 정순 역할을 맡아 누군가의 연인이자 누군가의 엄마이고 어딘가에 소속된 누군가의 동료이자 이웃인 정순의 입체적인 면면을 선연하게 드러낸다. 오는 4월, 2년 만에 개봉하게 된 '정순'을 통해 배우 김금순의 또 다른 진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배우라는 직업은 고단한 일상을 사는 대중들에게 충분히 판타지로서 존재할 수 있다. 즐거움을 주기 위해 배우들은 부단한 노력을 한다. 또한 배우의 어떤 순간들은 좀처럼 와닿지 않는 타인의 순간들을 가장 생생하게 우리의 마음 앞으로 건넨다. 사회의 이면과 타인의 고통을 전달하는 메신저로서 그들은 기꺼이 육중해진다. 그리고 그 투박하고 무거움에 이르기까지 배우가 쌓아 올렸을 섬세하고 예리한 겹들을 떠올리자면 존경의 마음이 든다. 김금순 배우의 행보에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비치기를, 그래서 그 선명한 발자국을 안심하고 따라 밟을 이들이 기꺼이 용기를 내기를.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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