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76] 3부 오름-(35)‘감낭없는 감낭오름’, 조롱과 냉소의 대상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76] 3부 오름-(35)‘감낭없는 감낭오름’, 조롱과 냉소의 대상
허황한 지명 유래, 실상을 모른다는 말과 같아
  • 입력 : 2024. 04.09(화) 00: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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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낭오름의 한자표기 시목악(枾木岳)은 제주 밖의 표기

[한라일보] 감낭오름이라는 이름의 오름이 있다.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육거리에서 가깝다. 표고 439.8m, 자체높이 45m다. 감낭이란 제주어로 감나무를 지시하므로 감나무오름이라고 판단하기 쉽다. 감나무와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있는 오름으로 보려는 것이다. 실제 오름 안내서나 오름의 지명에 관련한 책에는 이처럼 소개되어 있다. 세간에서는 '감낭없는 감낭오름'이라면서 사뭇 지명 해석에 대해 냉소적이거나 조롱하는 듯한 경우를 볼 수 있다.

사실 감낭오름에는 감나무가 있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감나무와는 어떤 관련도 찾을 수 없다. 이 지명은 '돌오름'에서 기원하기 때문이다. 이런 어원을 모르고 엉뚱하게 해석하여 괜히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왼쪽 원물오름과 오른쪽 감낭오름,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거린오름에서 촬영. 김찬수

고전을 보면 헷갈릴 만도 하다. 1653년에 편찬한 '탐라지'라는 책에 이미 '시목악(枾木岳)'이라 기록했다. 이후 19세기 말에 나온 '대정군읍지', 1872년에 나온 '대정군지도'에도 이렇게 따라 썼다. 이 시목악이라는 한자명은 해석에 주의를 요한다. 1600년대에 제주도 사람들이 시목악이라고 불렀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이 당시 제주 사회에 한자 문화가 생활화되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설령 한자가 일반화되었다 해도 지명을 한자로 명명한 후에 이제부터 이 오름은 이렇게 부르자 하고 합의하여 불렀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불렀길래 이원진 목사가 이렇게 썼는가를 찾아내는 것이 원래의 이름을 발굴하는 작업이 된다.

1709년 탐라지도, 18세기 초반에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대정현지도', 1872년에 나온 '제주삼읍전도'에는 '감남악(甘南岳)'이라 했다. 지역에서는 감남봉(監南峰)이라고도 한다.

원물오름 입구에 있는 못, 원물이라고 부른다. 김찬수



감낭오름과 원물오름은 같은 오름 같은 이름

원수악이 있다. 원물오름이라고도 한다. 감낭오름 남서쪽으로 연이어 있어서 하나의 오름으로 보일 정도다. 표고 458.5m, 자체높이 98m다. 자체높이로만 보면 감낭오름의 배가 넘지만, 해발고도가 낮은 곳에 있어서 높이가 비슷해 보인다. 이 오름은 1872년 '제주삼읍전도'와 '원대정군지'에 원수악(院水岳), 1899년 '제주군읍지', 1910년 '조선지지자료'에 원수악(元帥岳), 1965년 우낙기의 제주도라는 문헌에는 월른오름으로 표기했다. 지역에서는 원물오름이라 한다. 그 외로도 원수악(院帥岳), 원수악(院水岳), 원수악(元水岳), 원수악(鴛水岳)으로도 쓰는 것으로 채록된다.

그런데 이에 대한 과거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이상한 점을 알 수 있다. 예컨대 탐라지에는 시목악(枾木岳)은 나오지만 원물오름을 지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지명은 나타나지 않는다. 18세기 중반에 나온 '제주삼현도'라는 지도에는 감남악(甘南岳)은 나오지만 역시 원물오름이라고 할 만한 지명은 나타나지 않는다. 1861년 제작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시목악(枾木岳)은 나오지만 원물오름은 따로 표시하지 않았다. 이런 현상은 위의 대부분 서책이나 지도에 공통된 현상이다. 심지어 비교적 최근 지도라 할 수 있는 1918년 '조선총독부 발행 1:50000 대정 및 마라도 지도'에도 원수악(院水岳) 하나로 표기했지 두 개의 오름으로는 표기하지 않았다. 이런 기록으로 볼 때 과거에는 이 두 오름을 하나로 인식했다고 할 수 있다. 지명과 관련 중요한 점을 시사하고 있다. 원물오름을 나타낸 지명이건 감낭오름을 나타낸 지명이건 하나의 오름을 지시하는 지명이면서 그 이름들은 어쩌면 같은 뜻을 나타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각종 지도를 포함한 문헌상의 기록, 지역에서 쓰는 지명 등 두 오름의 이름은 모두 14개가 된다.

하나의 오름에 이름은 14개, 실상을 모르니 설만 난무

이 지명들은 크게 감낭오름계열과 원물오름계열 두 계열로 나눌 수 있다. 이중 감낭오름계열은 감남악(監南峰), 감남악(甘南岳), 시목악(枾木岳), 감목봉(柑木峰) 등 4개다. 나머지 모두를 원물오름계열로 보면 마차악(亇嵯岳), 앙차악(卬嵯岳), 원물오름, 원수악(院帥岳), 원수악(院水岳), 원수악(鴛水岳), 원수악(元水岳), 원수악(阮水岳), 월른오름, 유지(柳池) 등 10개다.

감낭오름계열 4개 지명 중 시목악(枾木岳)이라는 이름은 '감나무 시', '나무 목'이니 한자를 훈독자로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감남악(甘南岳)과 감남악(監南峰)은 한자를 음가자로 차용하여 감나무를 표현하려고 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사정을 알아보려면 관련 지명도 검토해야 한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원물오름계열의 지명 10개 중 원물오름, 원수악(院帥岳), 원수악(院水岳), 원수악(鴛水岳), 원수악(元水岳), 원수악(阮水岳) 등 6개는 '원'이라는 음이 들어있다. '원물'이라는 지명 유래는 그야말로 난무하기 이를 데 없다. 조선 시대에 대정원님이 이곳에서 물을 마셨다 하여 '원물'이라 한다는 설, 그 주변 샘의 이름을 따 '원물오름'이라고 했다는 설, 대정에서 제주로 가는 중간에 쉬어갈 수 있는 원(院)이 있었는데, 원에서 이용하는 물이 오름 남쪽에 있기 때문이라는 설, 원(元)이 목장을 설치하여 산기슭의 물을 이용하였기 때문이라는 설 등이다. 실상을 밝혀보면 얼마나 허황한지 알게 될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설이 있다는 건 역설적으로 그 유래를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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