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어 호수라는 뜻의 '글'에서 기원, 돈내코의 '코'와 같은 말
칡오름은 서귀포시 상효동 129번지이다. 칡이 많은데 연유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널리 유포되었다. 역사서에는 갈악(葛岳), 갈산(葛山), 갈봉(葛峰)으로 표기했다. 이러한 표기들은 모두 지역에서 부르는 '끌오름'을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훈가자를 차용한 것이다.
끌오름 동측 효돈천의 굴메소, 용암으로 계곡이 막혀 천연의 호수를 이룬다. 김찬수
상효와 신효를 포함한 지역에서는 대체로 끌오름이라 부른다. 이런 것이 언제부턴가 '끅오름' 혹은 '칙오름'으로도 부르게 되었다. '끅' 혹은 '칙'이란 제주어로 칡을 지시한다. 끌오름의 '끌'이 현실적으로 사물을 지시하는 어휘라고 하기에는 생소하므로 어떤 연상작용에 이끌려 유사음 칡을 떠올리게 되고 칡과 끅의 중간음 정도로 발음하던 것이 한자표기 과정에서 갈(葛)을 채용하게 된 것이다. 갈(葛)은 '훈몽자회', '신증유합', '유씨물명고' 등 고전에 모두 '츩갈'로 나온다. 훈가자를 차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오름 지명이 끌오름이었다는 것은 실제 지역에서 이렇게 부를 뿐만 아니라 인근의 지명을 보더라도 인정할 수 있다. 호수가 있는 오름이란 뜻이다. 우선 돈내코의 '코'가 쿨, 클, 글, 골에서 기원했다는 점은 이미 밝힌 바 대로다. 호수를 의미하는 북방어다. 구체적으로는 투르크어 기원이다. 이런 점에서 끌오름은 '글오름'이었을 것이다. 이 말은 어두음 경음화 현상에 따라 '끌오름'이 된다. 사실 돈내코라는 지명이 널리 퍼지기 전까지는 '돈내큼'이란 발음으로 통했다. '돈내클'의 변음이다.
쿨, 클, 글, 골은 투르크어 호수를 의미, 굴메오름(군산)도 같은 기원
효돈천에서 이런 지명은 더 있다. 신효동에는 같은 계곡에 '올레낭큼'이 있다. 여기 '올레'란 만주어 '(강을) 건너다'를 의미하는 '올로(olo)'에서 기원한 말이다. '낭'은 낭떠러지의 고어형, '큼'은 역시 호수다. 올레낭큼이란 '건널 수 있는 곳의 절벽으로 둘러싸인 호수'라는 뜻이다. 올레낭큼은 어느 정도 물이 불어도 마치 징검다리 같은 바위를 통해 건널 수 있는 곳이다. 이렇게 효돈천의 큰 호수들은 모두 '큼' 즉, 쿨, 클, 글, 골에서 기원한 말이 붙는다. 호수라는 뜻이다. 더욱이 끌오름은 효돈천에 연접한 오름으로 이곳의 계곡에는 '굴메소'라는 큰 호수가 있다. 이 지명의 '굴' 역시 '글'에서 기원한다. '메'라는 말은 앞으로 설명하겠지만 지명에서 '물'을 의미한다. '굴메'란 호수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오름은 글오름, 끌오름, 굴오름 등으로 불렀다. 호수가 있는 오름이라는 뜻이다. 인접한 영천오름 즉, 돌세미오름이 샘물이 흐르는 오름인데 비해 이 오름은 호수가 있다는 뜻으로 부른 대비지명인 것이다.
군산이라는 오름이 있다. 안덕면 창천리 564번지다. 표고 334.5m, 자체높이 280m, 둘레 8111m, 면적 283만6857㎡, 저경 2795m이니 규모가 매우 큰 오름이다. 그런데 이 오름은 굼메, 군뫼, 굴메오름, 군산(軍山), 서산(瑞山)으로도 부른다.
굴메오름, 서측 창고천에는 양재소를 비롯한 천연의 호수들이 있다. 김찬수
군뫼, 굼메의 군은 군식구, 군서방, 군말 따위의 '가외의' 또는 '쓸데없는'의 뜻을 가진 관형사 '군~'이 '뫼>메' (산)에 매겨져 있어 나중에야 갑자기 솟아난 산, 즉, 덧생긴 산, 가외로 생겨난 산이란 뜻으로 군산, 굴룬산 또는 굴루로 생겨난 산 즉 군메라고 설명한 책이 있다.
1454년 완성한 '세종실록지리지'에 구산(仇山),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굴산(屈山)과 굴산(堀山) 등으로 표기했다. 이 외의 여러 고전을 검토해보면 구산(仇山), 군산(軍山), 군산(群山), 굴산(堀山), 굴산(屈山), 굴산(窟山), 호산(蠔山) 등 7가지 정도로 추출된다.
굴메오름은 다래오름, 칡오름은 영천오름과 대비
굴산(堀山), 굴산(屈山), 굴산(窟山) 등은 한자표기가 제각각이지만 '굴'을 표현하려고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호산(蠔山)은 '호(蠔)'가 '굴 호'자므로 역시 훈가자 차용이다. 따라서 이 역시 '굴'을 표현한 것이다. 구산(仇山)의 '구' 역시 '굴'의 'ㄹ'탈락 형태로 '굴'의 다른 표기다. 결국 군산(軍山)만이 남는데, 이것은 구산의 경우처럼 굴산의 또 다른 표기다. 따라서 오늘날 군산(軍山)의 표기들과 지역에서 부르는 명칭은 '굴메'로 수렴된다. 그러므로 '군'은 군식구, 군서방, 군말 따위의 '가외의' 또는 '쓸데없는'의 뜻을 가진 관형사라는 식의 설명은 쓸데없는 말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이 굴메에 대해서 '굴'은 계곡을 의미하고 '메'는 '산'을 지시한다는 견해가 있다. 계곡을 의미한다는 것은 이 오름의 서북쪽에 안덕계곡이 있고, 서쪽 '다래오름(돌라미)'과 사이에 골짜기가 있다는 점을 내세운다. 그리고 과거에도 그런 기록이 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주어에서 계곡을 '굴'이라 하지 않는다. 오직 굴메오름을 칭할 때만은 계곡의 의미로 썼다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다. 이 '굴'이야말로 끌오름의 경우처럼 '호수'의 뜻으로 부르는 것이다.
끌오름은 '호수가 있는 오름'으로서 샘물이 흐르는 영천오름과 대비지명이다. 마찬가지로 굴메오름 역시 호수가 있는 오름으로서 물이 흐르는 다래오름의 대비지명인 것이다. 본 기획 79회와 82회를 참고하실 수 있다. 굴메오름 서쪽에 호수가 있다. 이 외에 칡오름이라 부르는 여타의 오름들도 이런 뜻에서 기원한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