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66)구좌읍 평대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66)구좌읍 평대리
자연자원 바탕으로 일군 전국적 농업경쟁력
  • 입력 : 2024. 06.14(금) 00: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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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치유의 숲 비자림을 품은 돝오름에서 북동쪽으로 길게 뻗은 마을이다. 언제나 평온한 느낌을 주는 것은 둔지봉을 청룡으로 하고, 다랑쉬오름을 백호로 호위를 받는 지세를 지녔으니 그러하다. 산 아래서 좋은 숲을 만나고 이어지는 밭들의 음성을 들으며 바다로 향하는 평대리. 구좌읍의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당연하게 교통의 요지가 된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동쪽은 세화리와 서쪽은 한동리 인가와 인접해 있으며 남쪽은 돝오름을 경계로 송당리와 닿아 있다. 세 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동동과 중동, 서동이다. 모두가 평화로운 농경지를 생존의 기반으로 성장했다. 설촌의 역사 속에는 평대리라고 하는 지명의 연원이 상세하게 전해지고 있다. 처음 마을이 태동된 것은 비자림 인근 검서굴왓이라는 평지에 모여 살다가 차츰 바닷가 쪽으로 이동해 지금의 정주형태를 지니게 된 것이라고 한다. '벵디'라고 하는 드넓은 버덩이 연이어 펼쳐지는 평탄한 지대를 이르는 곳이라는 뜻에서 마을 이름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벵디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어딘가 뜻이 통하는 이름이 평대(坪岱)가 된 것. 지명 중에 검서굴왓 인근에 몰고랑터가 두 곳이나 있는 것으로 미루어 촌락이 크게 형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남일 이장

고려 말엽부터 비자를 진상하였다는 기록과 고려 전기에 사찰터로 추정되는 평대리사지(현재 지명 절동산)로 추정해 본다면 촌락형성은 적어도 1000여년 전부터 이뤄졌다고 봐야 한다. 이토록 유구한 역사를 가진 평대리는 조선 후기 정조시대만 하더라도 김녕리 다음으로 구좌읍에서는 인구수가 많았던 마을. 지금도 양질의 농경지를 기반으로 전체 가구의 7할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어촌계 또한 활발하게 움직이는 마을이라는 것을 해안가를 돌아보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평대리의 대표적인 자연자원은 비자림이다. 주거 밀집 지역에서 남서쪽으로 6㎞ 지점에 위치해 있다. 천연기념물 제374호 비자나무 숲은 총면적이 448㎡ 정도이며 나무마다 일련번호를 부착해 보호하고 있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숲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보물을 문화재적 가치로 인정한 것은 한심하고 놀랍게도 1986년이었다. 비자림 속에서 느껴지는 신비한 청량감은 비자열매가 지닌 한방약제의 효능 그 이상이다.

마을 안길을 걷다보면 가장 눈에 많이 들어오는 것이 최고의 당근마을이라는 것을 알리는 벽화들이다. 40년 가까이 당근 주산지로 명성을 얻고 있는 이유와 자부심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지난 세월 무분별한 당근 수입으로 타격을 입으면서도 꿋꿋하게 전국적 당근브랜드 가치를 이룩한 마을공동체의 뚝심에 존경심이 우러난다.

이남일 이장에게 평대리가 보유하고 있는 가장 큰 자긍심을 묻자 간명하게 대답했다. "역지사지 하는 이해심입니다." 마을공동체 발전의 원동력은 주민들이 서로의 입장이 돼서 이해를 해주는 마음가짐이라는 것이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그러한 품성이 어찌 생각하면 평대리의 가장 큰 자산이기에 불화나 분란이 없이 서로 협력해야 할 것을 먼저 찾게 된다는 설명.

마을 주민 모두가 큰 기대를 가지고 있는 사업이 있다. 옆 마을 한동리와 함께 추진하고 있는 해양풍력발전사업이다. 민관공동 노력으로 작년 말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실질적인 공사가 이뤄지기를 기대하고 있는 현실이다. 마을 어르신들 또한 리사무소에 들르면 항상 물어보는 것이 "해상풍력 공사는 한다고 하면서 왜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느냐?"고 한다고. 평생 농사라고 하는 육체노동을 하며 살아온 분들이니 뭔가 사람과 기계의 움직임이 보여야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게 되니 그 답답함이 오죽하겠는가? 행정당국의 각 파트에서 이 사업과 관련하여 자기네 분야의 입장을 강조하면서 책상 위에서만 맴도는 사업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지는 않는 지 이를 조율하고, 추진력을 확보하도록 해야 할 상급기관에서 행정논리만 들먹거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실천력 중심으로 살아온 주민들은 마음이 급하다. <시각예술가>

좁고 긴 올레의 아침햇살
<수채화 79cm×35cm>

유월의 태양은 가장 밝고 환하게 아침을 만든다. 녹음이 우거진 계절에 유구한 역사를 가진 마을의 아침풍경을 그린다는 것은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긴올레 만한 것이 없어서 그렸다. 현무암 돌담이 보유하고 있는 질감과 색을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짙은 연필로 담채화 분위기를 유도하면서 눈부신 햇살을 그리기 위한 전초기지로 활용했다. 돌과 나무를 가지고 빛을 노래하는 그런 구조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은 농촌마을 서정성 그대로다. 얼마나 오래 전에 저 돌담을 쌓아 진입로를 만들었는지 돌들에게 물으니 족히 수 백 년은 걸렸을 것이라는 대답.

해를 등 뒤에 두고서 그리는 그림은 공간감을 얻기에 무척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을 그리지 않으면 길에 쏟아지는 밝은 희망을 그릴 수가 없어서 그린 것이다. 돌의 무게와 빛의 가벼움이 극렬하게 만나는 상황에서 유월의 초록이 두 진영의 싸움을 말리는 형국이다. 빛과 그림자가 원근감 속에서 상보적으로 모두를 살려내는 상생의 공간이다.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의 길을 그리려 마음을 먹은 것이다. 무욕의 세월을, 농심의 희망을 아침 햇살에 담았다. 근심거리만 없어도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사람들의 아침을 풍성한 공간감으로 확인하고자 했다. 후손들에게 물려줄 농경지도 중요했겠지만 소박한 이 길을 물려주며 어딘가 모를 안도감을 지녔을 그 분들을 생각하며 광선 하나 하나에 명암을 넣었다. 색은 빛의 산물이니 덩달아 춤을 추고. 마음은 더 밝다.

한라산이 품은 아이
<수채화 79cm×35cm>

마을회관 옥상에서 한라산 방향으로 바라보면 이런 확고하고, 명료한 메시지가 발견된다. 둔지봉을 품은 한라산. 그 바탕이 되는 나무들과 평지의 연결. 동양화의 여백을 극대화해 하늘로 삼았다. 군더더기가 필요하지 않은 단순미의 집결이다. 뷰포인트라고 감히 설정하지 않더라도 이 마을 조상님들이 여기에 터를 잡고 살아가게 된 시각적 관점이 느껴지는 상황이다. 방대한 농경지와 그 농경지를 둘러싼 풍부한 생태공간 또한 일상에서 만나는 이런 시각적 조화 속에서 잉태되고 세상에 나와서 삶을 영위하게 되는 것이리라 생각하며 그렸다. 수평구도 속에 오름이라고 하는 놀라운 존재감이 한라산을 배경으로 어머니와 자식을 연상하게 하니 그 바라보는 지점이 놀라운 시각자원이다. 계절별로, 시간대별로 느낌이 다르다는 사실은 필자의 오랜 관찰 결과 확인된 것이다. 섬 제주의 풍광 속에서 오름과 한라산이 중경과 원경으로 만나는 모습은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여기에서 경이로운 신비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교향곡의 저음 파트처럼 아래 펼쳐진 나무들의 군락 때문이다. 소박하면서도 당당한 둔지오름이 한라산을 모셔오는 상황으로 인식하더라도 부족함이 없다. 희귀한 놀라움을 관광명소라고 나불거리는 자들에게는 무미건조하게 보일 수 있는 풍광이로되 안온한 평화를 통해 힐링을 얻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편안함이 전해진다. 능선의 흐름을 가지고도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장소. 그 귀중한 가치를 알리기 위해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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