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시 한 줄을 쓰려고
질척대는 애인도 버리고
시 한 줄을 쓰려고
도란도란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었다
소나무잎보다 뾰족한
그리하여
찔러서 시 한 방울이라도
나올법한 산정을 찾아
소신 있게 울어대는 산속 매미가 되었다
산 등허리의 수많은 밤의 곡절을 들어주며
가까웠던 사람들의 타계 소식은 듣지 못했다
그 어마무시한 시 한 줄을 어찌
쓰려고
삽화=배수연
"시 한 줄을 쓰려" 하지만 애초에 시는 말할 수 없는 거여서 말하다 마는 순간에 안도(安堵)가 찾아오는 그런 종류이다. 사랑을 하다 하다 못할 때 봄이 오는 것이며, 미완성만이 인생에서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결핍 자체, 그걸 그물처럼 끌어당기고 대신 애인과 사람들로부터 탈주를 꾀하는 것이 시라면, 시는 참매미의 울음을 얻기까지 참매미가 되고 동박새의 날갯짓을 얻기까지 동박새가 되는 것이며 시가 되었다 시인이 되었다 정해진 역할도 마음도 없는 것일 수 있다. "산 등허리의 수많은 밤의 곡절을 들어주며" 그냥 미래로 향하는 것이다. 그 와중에 때가 되면 시인들도 소식 없이 세상을 떠난다. 결국 시라는 것조차 없거나 쓸모없는 것일 때 세상에 진짜 시가 살아난다는 것일까. 그럴 때라야 이 죽은 시인들도 같이 살아난다는 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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