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98] 3부 오름-(57)제주 지명에 나타나는 미, 메, 매는 '물'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98] 3부 오름-(57)제주 지명에 나타나는 미, 메, 매는 '물'
미, 메, 매가 산을 가리키는 제주어? 근거 없는 상상
  • 입력 : 2024. 09.10(화) 04: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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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어는 제주도에서 발생한
고유어라는 주장은 허구


[한라일보] '돌리미' 오름 지명에서 '돌'은 물을 의미한다. 이런 예는 토산의 지명에서도 봤고, 안돌오름, 밧돌오름, 감낭오름, 원물오름, 도두오름, 다래오름, 원당봉, 영천오름에서도 봤다.

비치미오름, 비치미의 '미'는 물이라는 뜻이다.

효돈천의 고지명 '돌내'는 물이 흐르는 내라는 뜻임도 밝혔다. 여기서 '돌'이란 모두 물이라는 뜻이었다. 본 기획 앞 회를 참고하실 수 있다.

그런데 돌리미오름, 비치미오름 등에서는 또 한 가지 지명어가 발견된다. 바로 '미'라는 말이다. '미'라는 말은 하나같이 '산'이나 '뫼'를 지시하는 제주어라고 한다. 과연 '미'라는 말이 제주어에서 산을 가리킬까? 언젠가부터 지명 관련 설명에서 미, 메, 매는 산을 가리키는 제주어라고 한 이래 너도나도 이를 따라 한다. 그러나 관련 사전에 이런 내용은 없다. 현실 언어생활에서도 산을 가리켜 미, 메, 매라고 하는 경우를 볼 수 없다. 논증에는 근거 제시가 필수다. 제주어에서 미, 메, 매가 산을 가리킨다고 하려면 왜 그런지 밝혀야 한다. 사전에도 없는 이야기를 일반화해 버리면 논리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리고 간혹 제주어의 독특성을 강조하려는 나머지 제주어는 제주에서 발생한 제주 고유의 언어라고 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논리의 비약이다. 아무리 제주도 원주민이라 해도 언어는 어디선가 가져온 것이다. 다만 억양이라든지 아주 일부분의 어휘에서 자체 발생한 경우가 있을 수는 있다. 그렇다 해도 언어란 기본적으로 어디선가 가져온 것들이다. 그러던 것이 섞이고 새롭게 분화하면서 특징을 가지게 된다.





고구려어 '미', 고려어 '매', 제주어의 기원은 다양


제주 지명에 쓰인 '미'라는 말은 아주 중요한 지명어다. 이미 고구려 지명에서도 사용했다. 삼국사기 지리지에 표기된 것만 16개에 달한다. 한자 '매(買)'를 차용했다. 내(川)와 우물(井) 혹은 샘(泉)을 뜻했다.

내(川)의 뜻으로 사용한 예로는 남천현일운남매(南川縣一云南買)가 있다. '남천현은 남매라고도 한다'라는 뜻이다. 삼국사기라는 책은 고려 때 만들어졌다. 고려라는 국가에서 남천현(南川縣)이라는 행정 지명이 있는데 옛날 그러니까 고구려 때에는 남매(南買)라고도 했다는 뜻이다. 술천군일운성지매(述川郡一云省知買)라는 예도 있다. '술천군은 성지매라고도 한다'라는 뜻이다. 고려의 술천(述川)은 고구려 때 성지매(省知買)라는 뜻이다. 이때 술천(述川)과 성지(省知)는 고대음이 거의 같다. 그 이유는 어승생오름 편에 자세히 설명한 바 있다.

우물(井) 혹은 샘(泉)의 뜻으로 사용한 예로는 천정구현일운어을매곶(泉井口縣一云於乙買串)이 있다. '천정구현은 어을매곶이라고도 한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買(매)라는 한자는 지금은 '매'라고 읽지만 고대음은 '매'를 포함해, '마이', '메그', '므레그', '메이'처럼 발음했다. 국어에서는 1527년 훈몽자회, 1576년 신증유합에 '살 마ㅣ'로 나온다. 물건을 사고파는 것을 매매(買賣)라고 한다. 이때 사용하는 글자다.

다시 삼국사기 지리지에 나온 예를 보면,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고구려와 고려라는 시대 간 변천에 따른 대응만 아니라, 발음만 다소 바뀐 부분도 볼 수 있다. 내을매일운내얼미(內乙買一云內米)가 대표적이다. '내을매는 내이미라고도 한다'라는 뜻이다. 즉, 고려 때 매(買)라고 한 것은 고구려 때에는 미(米)라고 했다는 뜻이 된다.

이 매(買)라는 지명어는 어두와 말음절 표기로 구분되는데, 어두에 올 때는 '물'의 또 다른 표기다. 즉, 물을 매라고도 했다는 것이다. 고대어에서 물을 '미~믜'로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 제주어 미 혹은 매,
일본어 미, 퉁구스어 무


1799년에 나온 의서 제중신편이라는 책에 해삼을 '믜'라 했다. 제주어에서 해삼을 '미'라고 한다. 1517년 사성통해, 1527년 훈몽자회 등에는 미꾸라지를 지시하는 니추(泥鰍)를 믯구리라 했다. 1690년 역어유해에는 믯그리를 니추어(泥鰍魚)라 했고, 1802년에 나온 어휘집 물보, 1824년에 나온 박물서 유씨물명고 등에는 '뮈'로 나온다. '미~믜'를 물의 뜻으로 썼음을 알 수 있다. 제주어 해삼을 지시하는 '미'라는 말은 이런 고대어의 살아 있는 화석이다. 조선 전기 두시언해에 나오는 미나리, 1748년에 편찬한 동문유해에 나오는 미쟝이(泥水匠) 등도 '미'를 물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위의 삼국사기 지리지에 천(川)과 정(井)도 물이라는 자질에 의해 형성되는 사물이므로 매(買)에 대응하는 것이다.

이웃하는 언어에서는 어떻게 쓸까? 일본어 미, 퉁구스어 무, 몽골어 무렌 혹은 모론 등과 대응한다. 특히 퉁구스어권에서는 제주 지명어에 흡사한 발음이 많다. 에벤키어, 네기달어, 올차어, 오로크어, 오로첸어, 솔론어 '므', 에벤어 '매', 주르첸어 '모' 등이다. 무, 므, 모, 메로 대응하는 북방어는 사실 제주어와 상당히 일치한다. 제주어에서 해파리를 물이실 혹은 미우설이라고 한다. 물을 미라고 하는 사례다. 미역은 메역이라고 하여 미와 메(매)가 대응하는 구조다. 지명에선 돌리미, 비치미 등의 '미', 바매기의 '매' 등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이 같은 예를 보면 제주 지명에 남아있는 '미'와 '매'는 물을 지시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 대체로 '미'가 '매'에 비해 고어형이며, '미'는 고구려어, '매'는 고려어임을 알 수 있다. 물론 고려 이전에도 썼을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보면 돌리미오름과 비치미오름의 '미'는 고구려어다. 물이 있는 오름이라는 뜻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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