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서귀포에서 사전 행사를 연다고 해서 축제 시작 전 분위기를 돋우기 위한 가벼운 무대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장소가 바뀐 줄 모르고 찾았던 해안가 자구리공원에 걸린 변경 안내 현수막을 보고 뒤늦게 상황을 파악했다. 지난 3일 천지연폭포 칠십리야외공연장에서 펼쳤던 제63회 탐라문화제 민속예술축제 경연이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이게 제주 민속 예술의 현실인가" 싶었다. 민속 예술·걸궁 두 부문 경연이 마련된 민속예술축제는 한때 탐라문화제의 하이라이트였다. 알다시피 불미공예, 방앗돌굴리는노래, 멸치후리는노래, 해녀노래와 같은 제주도 지정 무형유산은 탐라문화제에서 발굴된 종목이다. 무형유산 지정이 경연 참가 목표는 아니겠으나 이는 마을에 전해오는 민속을 불러내고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백화점식으로 프로그램을 나열했다"는 세평이 거의 매년 빠지지 않는 와중에도 민속예술축제가 탐라문화제의 중심을 잡았다.
하지만 근래엔 탐라문화제의 핵심 행사로 거리 퍼레이드를 내세우고 있다. 여러 해 전부터 소재 고갈, 제주색 퇴색 등 지적이 잇따르고 일각에선 경연 폐지론까지 제기하는 등 민속예술축제의 위상이 과거와 같지 않은 영향이 커 보인다.
그래서일까. 모처럼 서귀포에서 탐라문화제가 개최됐지만 관심도가 낮았다. 당시 비 날씨가 예보된 걸 감안하더라도 경연에 나선 제주시·서귀포시의 6개 읍면동 민속보존회 회원과 관계자를 빼면 관객 수를 헤아리기 민망할 정도였다. 주최 측이 민속예술축제 경연 이틀 후에 탐라문화제 개막 일정을 잡은 것을 보면 애초부터 서귀포 행사에 대한 기대감이 없었던 것일까. 사전 행사의 면면은 여러모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무형유산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며 미래의 제주 문화를 풍성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속예술축제는 무게감을 갖는다. 이 기회에 민속예술축제의 방향성을 고민했으면 한다.
다른 시도에서처럼 민속예술축제를 탐라문화제와 분리해 별도 행사로 치르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제주도의 '제주 무형유산 대전'과 연계하는 방식으로 기존 무형유산 지정 종목에 더해 읍면동에서 보유한 민속 예술 작품을 알리는 거다. 읍면동 민속보존회에서 경연을 위해 억지로 새것을 제작하기보다는 앞서 만들었던 작품을 오늘날에 맞게 되살리는 일도 필요하다. 그동안 마을에서 애써 찾아낸 그 많은 민속 예술 공연들이 지금 얼마나 활용되고 있는지 돌아본다면 말이다. 탐라문화제 민속 예술 부문 최고상 수상팀에게 한국민속예술제 제주 대표 출전권을 부여하는데 '제주 무형유산 대전'에선 전승이 활발한 읍면동 민속보존회를 평가해 동일한 자격을 주면 된다.
2025년은 국가유산청에서 정한 '제주 국가유산 방문의 해'다. 자연유산만이 아니라 제주 섬 무형유산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해인 만큼 민속보존회 운영으로 내공을 다져온 마을들에서 저마다 대표 작품 하나씩 가꿨으면 좋겠다. 이를 통해 읍면동 민속보존회의 색깔도 각기 다르게 드러낼 수 있다. <진선희 제2사회부국장 겸 서귀포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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