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관료들의 잘못된 표기를 따라 하는 현실
[한라일보] 제주시 애월읍 수산리 산1-1번지, 표고 121.5m, 자체 높이 92m이다. 그저 평범해 보아는 오름이다. 이 오름에는 인접해서 큰 저수지가 있다. 이 저수지가 제주지역에서는 꽤 큰 편에 속하고, 일대의 경관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언 듯 생각해서는 수산마을이라거나 물메, 물미 혹은 수산봉이라는 지명은 이 저수지와 관계가 있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수산저수지는 1957년 쌀농사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 건설하기로 계획됐다. 이에 따라 1959년 3월 건설을 시작하여 이듬해 12월 완공되었다. 이 저수지는 노꼬메에서 발원하여 이곳을 거쳐 삼밭알 내깍을 통해 바다로 흐르는 내를 막아 건설됐다. 이로 인해 72세대가 살던 오름가름이 수몰되었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보면 이 저수지는 만들어진 지 오래되지 않았고, 더구나 수산봉이라는 이름이나 수산마을이라는 이름보다 훨씬 늦게 지어진 이름이라는 걸 알게 된다.
물메오름에서 바라보이는 수산저수지. 김찬수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산악(水山岳)으로 표기한 이래 여러 고전과 오늘날의 네이버지도와 카카오맵에 물메, 물메오름, 물미, 물미오름, 수산, 수산악, 수산봉 등으로 부르거나 표기해 왔다. 지명의 '물'은 수(水)로 한자 차용했다. 물미, 물메의 미와 '메'는 뫼의 변음으로 보고 산(山)으로 차용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북제주군의 지명총람이라는 책에는 메와 미는 뫼의 제주어라 설명했다. 그러나 이건 아무런 근거도 없는 말이다. 제주어에서 메나 미가 산을 지시한다는 어떠한 용례도 없을 뿐만 아니라 현실 언어생활에서도 그렇게 사용하지 않는다. 제주어에서 산을 지시하는 말은 오름, 올, 아리, 울 등이다. 이처럼 막연한 추측으로 논리를 편다면 일반에서 혼란을 일으킬 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이런 추측의 밑바탕에는 과거 육지에서 내려온 관료들이 이같이 추측하여 적었던 것에 기인하는 바 크다.
'메'와 '매'는 고구려어 우물 혹은 샘
이 제주어 '미'나 '메'는 제주어에서는 물을 지시한다. 고구려어 기원이다. '마', '미', '메', '매', '뫼' 등이 '물'을 지시한다는 내용은 본 기획 98회 이래 몇 회를 참고하실 수 있다. 이미 했던 이야기를 또 꺼내는 것이 다소 부담스럽긴 해도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연 설명한다.
제주 지명에 쓰인 '미'라는 말은 중요한 지명어다. 이미 고구려 지명에서도 사용했다. 삼국사기 지리지에 표기된 것만 16개에 달한다. 한자 '매(買)'를 차용했다. 내(川)와 우물(井) 혹은 샘(泉)을 뜻했다. 그런데 이 買(매)라는 한자는 지금은 '매'라고 읽지만 고대음은 '매'를 포함해, '마이', '메그', '므레그', '메이'로도 발음했다. 국어에서는 1527년 훈몽자회, 1576년 신증유합에 '살 매'로 나온다. 그러므로 서울에서 산을 지시하는 '뫼'와 발음이 매우 유사하게 된다. 따라서 서울 사람이 제주에 와서 이런 발음 접한다면 산을 지시하는 말로 들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오늘날의 학자들은 이게 맞는 해석인 줄 알고 따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고대어로는 물을 매라고도 했고, '미~믜'로도 썼다. 이런 발음은 의도적으로 하지 않는 한 뫼로도 하게 되고, 또 그렇게 들리기도 한다.
2020년도에 애월읍 수산리가 발행한 물메향토지에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내용들이 실려있다. 이 오름은 예전에 오름 봉우리에 연못이 있어 물+메(미), 이를 한자로 대역하여 수산봉(水山峰)이라 불리고 있다. 그러면서 정상에 있었다는 면적 16㎡의 연못에 물이 가득한 사진이 실려있다.
한편, 오름 정상부를 영봉(靈峯)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어 더욱 흥미를 자아낸다. 즉, "'아름답고 어질다'하여 영봉(靈峯)이라 하였는데, 이것은 제주지역에 극심한 가뭄으로 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제주목사가 기우제를 지냈던 곳이다. 이 영봉에는 제단이 있었고, 인근에는 우물이 있었는데 오랜 가뭄에도 물이 고여 있어 신비하다 하여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전한다. 과거에는 식수로 사용하였으나 지금은 이곳에 작은 연못을 조성하였다." 물이 나는 곳이니 기우제를 지내는 장소로 삼았을 것이다.
과거 우물이 있던 자리로 추정되는 곳으로 최근까지 물이 가득한 못이었다. 김승규
영봉은 백제어, 신라어와 같은 기원
그런데 정상부를 하필 영봉이라 했을까 하는 것이다. 그냥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오게 되는 신령한 장소라는 의미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 쉽다. 이 영(靈)자는 '신령 령'자로 쓴 것이 아니다. 이 글자를 지명에선 돌(달)로도 쓴다. 백제지명에 나오는 예가 있다. 영암(靈巖)과 마령(馬靈)이다. 고려사 지리편에 '영암군 본 백제 월나군 경덕왕개명 금인지(靈巖郡本百濟月奈郡景德王改名今因之)'라는 구절이 있다. 그런가 하면 '마령군 본 백제 마돌 일운 마진 일운 마등량(馬靈郡本百濟馬突一云馬珍一云馬等良)'이라는 말도 나온다. 영암(靈巖)은 백제 때에는 월나(月奈)라 했으므로 영(靈)은 달이라 했다는 의미가 된다. 그리고 마령(馬靈)은 백제 때 마돌(馬突)이라 했다는 것 역시 영(靈)은 달(突)이라 했다는 것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언어란 이런저런 과정으로 퍼져나가고 존속하면서 변형되기도 한다. 이 영(靈)자를 드라비다어에선 '달'로 발음한다. 영(靈)이 지명 표기에 동원된 예는 신라지명에서도 여럿 보인다. 따라서 이 '영(靈)' 자는 한자를 이렇게 썼을 뿐 '달'로 읽으라는 것이다. '달'은 고대어로 물을 지시한다. 서귀포시 영천오름은 같은 예이다. 영봉(靈峯)이란 '돌 봉우리'이므로 물이 있는 봉우리라는 뜻이다.
수산봉은 물메의 '메'가 산을 지시하는 말이라는 오해에서 한자를 빌려 쓴 표기이며, 본시 뜻은 '물+물'의 구조로 물이 있는 오름이라는 뜻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기사제보▷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