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올해 '비엔날레'를 6개나 본 비엔날레고어로서 한 해의 마무리를 비엔날레 촌평으로 해도 좋을 것 같다. 6월 말의 베니스비엔날레. 코로나 팬데믹 때만 빼고 2009년부터 15년간 챙겨봤으니 이건 성지순례다. 국가대표 미술선수들의 올림픽에 향기를 작품으로 내세운 한국관이 다소 초라했다는 중평 정도를 남길 수 있겠다. 본전시에 포함된 두 명의 퀴어예술가 89세의 김윤신과 이강승의 작품은 300여 점의 화려한 작품들 사이에서도 눈에 들어왔다.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김윤신, 엘에이에 거주하는 이강승의 작품 외로 월북작가인 이쾌대와 친일파로 여겨졌던 장우성의 작품도 이국적인 베니스 하늘 아래에서 보니 신선하고 반가웠다. 이 작가들을 묶을 수 있던 주제는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
8월은 부산비엔날레 현대미술전이었다. '어둠 속에서 보기'라는 주제로 내세운 작품들은 구현하고 하는 바도 암흑에서 길을 잃은 마냥 선명치 않았다. 부산의 도시성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던 직전의 현대미술전과 대조적이라 대체로 혹평을 받은 듯하다. 나도 미술전문지에 리뷰를 썼지만 회고하자니 인상에 남는 작품 한 점이 없다. 예산은 17억.
전시가 끝나기 바로 전날, 지역출장을 핑계로 가까스로 볼 수 있었던 11월 초의 창원조각비엔날레는 의외였다. 조각계에서는 찾기 힘든 여성 작가 여럿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지역의 공간들과 자연스럽게 호흡하도록 세심하게 큐레이팅한 전시였다. 작품들과 전시연출은 창원마산진해 지역을 새롭게 바라보게 했고, 익히 알려진 작가들의 구작과 신작을 창원시의 공간들 안에서 재해석해볼 수 있게 해줬다. 지역 비엔날레의 기능이 이런 것이었는데 그간 구현을 못한 것이었다는 기분 좋은 충격을 안겨준 전시였다. 81년생 현시원 예술감독의 역량이 잘 드러났다. 모든 예술감독이 이런 수준의 행사를 꾸린다면 비엔날레가 말많은 지자체의 천덕꾸러기가 되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예산은 16억.
11월 말에 방콕비엔날레를 처음으로 봤다. '내츄럴 가이아'라는 주제로 인간과 비인간에 대한 개념을 유명작가의 대규모 작품 위주로 친절히 소개하는 좋은 전시였다. 주제에 맞지 않는 듯한 작품이 한 점도 없다는 게 정직해서 신선한 느낌이었다. 창원이 한국형 지역비엔날레의 해답이었다면 방콕은 대규모 국제전시의 정답이었다.
광주비엔날레는 두 번 봤다. 올해 광주비엔날레는 30주년을 기념하면서 베니스비엔날레처럼 국가관을 꾸린다는 것을 대대적으로 내세웠는데, 그 국가관들이 제대로 기능했는가를 묻는다면 아직은 모르겠다. 니콜라 부리요라는 미술계 슈퍼스타를 예술감독으로 모셨지만, 그가 판소리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내세웠는가에 대해서는 말이 많다. 예산은 151억.
마지막, 13억 예산의 제주비엔날레에 대한 촌평은 한 마디면 충분하다. 예산이 적다는 게 성공 후의 투정이 될 순 있지만, 실패의 핑계가 될 순 없다. <이나연 전 제주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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