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Anesthesia는 2016년 3월에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미국영화 '월터 교수의 마지막 강의'의 원제다. Anesthesia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으면 마취, 마비라는 뜻을 갖는다. 영화의 제목을 Anesthesia라 한 것은 점점 무감각해지는 현대인들의 자의식 해체를 지칭한 것은 아닌지 가늠해 본다.
영화는 철학 교수 월터의 예기치 못한 죽음을 시작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를 도치법으로 또는 귀납법으로 '인간으로 산다는 건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1시간 29분 동안 담아내고 있다.
나는 이 영화 '월터 교수의 마지막 강의'를 나의 수업에 인용한 적이 있다. 영화 전반에 걸친 다양한 세대의 자의식 해체라는 문제점에 관한 의견을 각자의 관점에서 토론해 봤었다.
이 영화를 문득 떠올린 것은 다름이 아니라, 지금 어지러운 우리나라 상황을 지켜보면서 나는 이 영화의 한 대목이 오버랩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형편없는 세상에 자식을 내맡기잖아요. 그렇게 잔인한 짓이 또 어딨어요. 우리가 겪은 고통,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후대에 고스란히 넘겨줘야 하는가?'라며 자조적인 목소리로 마지막 강의를 마치던 월터 교수의 모습이다.
작금의 우리나라도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후대에 물려줄 상황을 맞이할 뻔했다.
무엇인가에 Anesthesia된 듯 정상적인 판단력을 잃은 한 사람으로 인해 국가비상사태(國家非常事態)에 돌입해 있다. 게다가 나라를 위기에 빠트린 그들을 옹호하고 동조하는 비정상적인 그룹의 비겁하고 파렴치한 모습까지 지켜봐야 한다. 기성세대로서 정말 부끄럽고 미안하다.
지난 9일 월요일, 평일인데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은 청소년부터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까지 속속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나는 곁에 선 중3 혹은 고1 정도로 보이는 청소년에게 이렇게 추운데 왜 이곳에 나왔느냐고 묻자, 얼마 전 수업 시간에 근대사와 현대사를 배웠다고 했다. 계엄이 얼마나 무모하고 잔인한 통치수단이라는 것을 배웠는데, 지금 그런 일이 또 일어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나왔다고 했다.
미래세대의 주인인 그들이 얼마나 황망했고 당황스러웠으면 한달음에 손과 발이 꽁꽁 얼어붙는 광장으로 나왔을까?
곁에 선 어르신도 대명천지(大明天地)에 또 그런 흉측한 일을 당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광장으로 나왔다고 했다.
셰익스피어 '리어왕'에 이런 구절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교활한 속임수가 드러날 거야. 잘못을 덮으려는 자들은 결국 그 잘못이 그들을 부끄럽게 하겠지.'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부끄러움이라도 아는 자들이길 간절히 바라며 하루빨리 이 어수선하고 어지러운 정국이 안정되길 바란다. <장수명 동화작가>
■기사제보▷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