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늦은 해가 나자
약을 먹고 오래 잠들었던
당신이 창을 열었습니다
어제 입고 개어놓았던
옷을 힘껏 털었고
그 소리를 들은 저는
하고 있던 일을 덮었습니다
창밖으로
겨울을 보낸 새들이
날아가는 것도 보았습니다
온몸으로 온몸으로
혼자의 시간을 다 견디고 나서야
겨우 함께 맞을 수 있는 날들이
새로 오고 있었습니다
*「84p」부분

삽화=배수연
아픈 당신이 아침 창을 열었다. 근처에 있는 나는 그 소리를 듣고 하던 일을 멈춘다. 그만큼 서로의 거리는 가깝지만 당신의 시간은 가뭇없이 "온몸으로 혼자" 가야 하는 생활이다. 그 겪음은 누군가 돌볼 수는 있으나 개입은 불가능한, 끝내 기억의 유산으로 내주어야 할 애틋한 혼자의 세계이다. 세상엔 하루는 고열이 나고/이틀은 좋아졌다가/다음날 다시 열이 오르지 않으면 알아보지 못했을, 노래가 되지 않았을 '당신들'이 있다. 그중 누군가의 옆에 서본 적이 있는 사람은 본다. 오늘 당신이 연 창밖으로 겨울을 보낸 새들이 날아가는 것이 보인다. 봄이 오고 있다. 아니 봄은 약봉지 속에서 "겨우" 살아나고 있다. 언제까지 같이 봄을 맞을 수 있을진 모르지만, 다행히 이번 봄은 함께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이면지에 새로 쓰이는 아찔한 봄날처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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