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훈의 한라시론] 들국화는 없다

[김양훈의 한라시론] 들국화는 없다
  • 입력 : 2026. 09.10(목) 01:00
  • 김양훈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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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누가 뭐래도 이제 가을이다. 이맘때쯤 들국화 가득 핀 중산간 들길의 풍경은 상상만 해도 가슴을 아련하게 한다. 뒤이어 안도현의 4행시 「무식한 놈」이 떠오른다.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다!"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또렷이 구별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사람들은 쑥부쟁이, 구절초, 벌개미취, 산국, 갯국화 등을 한데 묶어 흔히 '들국화'라 부른다. 그런데 알고 보니 국가표준식물목록에 '들국화'라는 식물명은 없다. 시의 마지막 구절은 해학이겠지. 들꽃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한다고 절교를 선언하다니, 처벌 비례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그렇다면 시인이 정색하고 '너'를 타박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 시는 알레고리적 작품이다. 꽃 이름을 모르는 무식함을 삶의 태도와 엮어내는 우화적 구조로 확장했기 때문이다. 시의 진짜 주제는 식물학적 무식함이 아니라 '바라봄(觀)'이다. 무엇을 알고 모르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세상사를 진지하게 바라보는 마음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식한 놈'은 안목(眼目)이 모자란 사람을 가리킨다.

이 시의 풍유(諷諭)를 최근의 유튜브 저널리즘에 빗대어 보자.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발표한 '디지털 뉴스 리포트(2026)'에 따르면, 한국 응답자의 49%가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통해 뉴스를 이용한다고 답했다. 이는 조사 대상 48개국 평균인 31%보다 크게 높은 수치다. 뉴스 크리에이터는 레거시 언론사 소속 기자가 아니더라도 디지털 플랫폼에서 시사와 뉴스 콘텐츠를 직접 제작·재가공·해설하여 대중에게 전달하는 이들을 말한다. 미디어 학계에서는 최근 이들을 뉴스 매체의 '새로운 주체'로 주목하고 있다.

이들의 출현은 기존언론의 독점 권력을 분산시킨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저널리즘의 기본인 전문성과 사실 확인의 부실이 늘 도마 위에 오른다. 기존 매체에는 '문지기', 즉 편집자와 팩트체커라는 제도적 장치가 있다. 하지만 신생 유튜브 시사 채널은 이러한 기본을 담보하지 못한다. 움베르토 에코는 일찍이 이를 예견하며 "모든 사람에게 마이크를 주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만, 모든 목소리를 동일한 권위를 가진 것으로 대하는 것은 위험하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최근 장미란 씨 사건을 둘러싼 일부 유튜브의 보도는 이러한 위험을 여실히 보여준다. 사건의 사실관계를 따지기보다 '무능한 경찰' 프레임이나 '검찰 수사권 문제'로 몰아가는가 하면, 일부 렉카 채널은 중국인의 장기 매매와 범죄 카르텔 같은 확인되지 않은 음모론을 퍼뜨리며 제주에 대한 혐오와 공포를 부추긴다.

새로운 미디어 시대, 뉴스의 홍수 속에서 절실히 필요한 것은 뉴스와 쓰레기를 가려낼 수 있는 안목이다. '정준희의 논;' 같은 전문 미디어 비평 채널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들국화는 없다. 뉴스도 마찬가지다. 화면 속 영상이 모두 진짜 뉴스는 아니다. <김양훈 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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