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경의 건강&생활] 가능한 사랑

[신윤경의 건강&생활] 가능한 사랑
  • 입력 : 2026. 09.16(수) 01:00
  • 신윤경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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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소문과 뉴스가 실어 나르는 것은 흔히 누군가를 향한 비난이고, 심하면 악마화다. 다툼이 일면 사람은 저마다 옳고 선한 자리를 차지하려 한다. 자신을 정당화하고 상대를 그른 쪽에 세우려는, 때로 자신을 피해자로, 상대를 가해자로 놓으려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도덕적 권위와 힘, 호의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저마다 제 시비를 진실처럼 퍼뜨리고, 편이 모이고, 밀려난 이에게는 비난과 배제와 고립이 돌아간다. 이 다툼은 가정과 학교, 일터와 마을에서 되풀이되고, 커지면 국가나 민족의 분열과 전쟁이 된다. 우리는 여전히 그 한복판을 위태롭게 산다.

비난에서 악마화까지는 몇 걸음 되지 않는다. 다투는 동안 상대의 맥락과 사연과 복합성은 지워지고, 부분적 행위만 확대된다. 상대의 행위는 곧 그의 성격이 되고, 본성이 된다. 상대는 더 이상 한 사람이기를 그치고 하나의 유형이 된다. 유형은 뻔하기에 물을 것이 없다. 묻기를 그친 자리에서 괴물이 태어난다. 상대와 나 사이에 걸린 것이 클수록, 그가 거북할수록 내 두려움과 미움이 커진다. 두렵고 미울수록 상대는 더 사악하고 끔찍해진다. 괴물은 언제나 맞은편에서 목격된다. '오디세이아'의 외눈박이 거인에게는 동굴에 숨어들어 하나뿐인 눈을 찌른 오디세우스가 괴물이었다. 맞은편에서 보면 괴물은 나다.

괴물을 만드는 사나움은 대개 사랑의 결핍이 아니다. 사랑에는 핵이 있다. 몸이 한 번에 한 곳에만 있을 수 있기에, 마음도 몇 사람 곁에서만 깊어진다. 핵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안의 온기는 밖의 냉기가 되기 쉽고, '우리'라는 말은 어김없이 '그들'을 만든다. 차별과 혐오가 거기서 피어오른다. 사랑이 핵을 넘어 번져 가는가, 안으로 굳어 배타가 되는가―이는 그림자를 의식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림자를 의식한다는 것은 우위에 서고 싶고, 마음대로 하고 싶고, 남을 속이고 이용하고 밀어내고 싶은 마음이 내 안에 있음을 아는 일이다. 그 어둠을―부끄러움과 괴로움을 바라보는 것이다. 누군가를 비방할 때, 내 그림자를 투사하고 있음을 성찰하는 일이다. 이는 자아를 지움으로써가 아니라 자아가 여물어짐으로써 가능하다.

다툼 없는 관계는 없다. 지속은 충돌을 품고, 충돌을 통과하지 못하면 관계는 해체된다. 그 통과의 힘은 같은 사람을 향한 사랑과 미움을, 너와 나의 모순을 한 마음에 담아 견디는 데서 온다. 정신분석은 이를 성숙이라 부른다.

우리 모두 자신의 빛과 그림자를 지녔다. 빛과 그림자는 한 쌍이고 필연이다. 그림자는 내가 허용하지 않은 나다. '너도 나처럼, 나도 너처럼 그러하구나' 하는 인정이 상대를 나와 같은 자리에 세우고, 공존은 비로소 숨을 얻는다. 그런 나를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만큼만 그런 너를 바라보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 평등과 겸손 위에 공존이 서고, 사랑이 가능해진다.

사랑과 공존이 아니라면, 인간이 무엇일 수 있을까. <신윤경 봄정신의학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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