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문학의 현장](8)장일홍의 '붉은 섬'-1

[4·3문학의 현장](8)장일홍의 '붉은 섬'-1
붉은 동백 뚝뚝 떨어지던 통곡의 그날
  • 입력 : 2008. 02.29(금) 00:00
  • 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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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선흘의 오래된 팽나무. 스스로 목숨을 내던지고, 처형이 이루어지고, 선동가의 외침이 있었던 희곡속의 팽나무가 그렇듯 이 나무도 4·3을 온 몸으로 겪었으리라. /사진=김명선기자

1947년 3월~49년 6월 조천 선흘리 배경 희곡
현재진행형의 사건으로 4·3을 정면으로 다뤄
"할망당이 우리 마을 지켜주리라 믿었건만…"


햇볕이 한줌이라도 더 비쳐드는 곳에선 동백이 붉은 꽃망울을 터뜨렸다. 한발짝 걸음을 옮겨놓으니 사정이 달랐다. 위로 쭉쭉 솟아 하늘을 덮어버린 숲의 나무는 아직도 꽃소식이 없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동백숲이 우거진 이 마을은 지금 막 겨울에서 봄으로 건너갈 채비에 한창이었다.

"샛별오름에 봉화가 올랐구요, 한라산 능선마다 벌건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어요. 아버님, 난리가 나도 보통 난리가 아닌 것 같은데 이를 어쩐다죠?"('붉은 섬')

동백꽃이 그렇게 불타듯 피어날까. 선흘리를 배경으로 쓴 장일홍씨(59)의 희곡 '붉은 섬'(1991)은 피로 물든 4·3의 역사를 담고 있다. 제주시 토박이인 작가는 선흘리와 연고가 없다. 희곡을 준비하면서 4·3 관련 국내외 자료를 찾아 읽는 동안 선흘리를 무대로 선택하게 됐다.

'1947년 3월부터 1949년 6월까지 제주도 북제주군 조천면 선흘리 일대'라고 희곡 도입부에 명시해 놓았지만 작가는 이 작품을 쓰면서 선흘리를 별도로 답사한 적이 없다고 한다. 선흘리란 이름을 빌려 4·3의 전개과정을 생생하게 펼쳐놓았던 터라,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작품속 공간을 떠올리며 마을을 찾았다.

"무지몽매한 섬사람들에겐 애초에 이념이니 뭐니 하는 건 다 사치스런 장식품에 불과했고 살기 위해서 그들은 낮에는 태극기를, 밤에는 인공기를 동구밖 알구슬나무에 걸었어. 정직하게 말한다면 토벌대나 빨치산은 섬 주민들에게 있어서 다 같이 적이었던 거야. 왜냐하면 그들은 죄없는 양민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빼앗았기 때문이지."('당신의 눈물을 보여주세요')

'붉은 섬'보다 앞서 발표된 희곡의 한 대목이다. '붉은 섬'은 회상 형식으로 4·3을 불러내던 전작과 달리 4·3을 정면으로 다뤘다. 희곡 첫머리에 작가가 직접 '4·3일지'를 만들어 덧붙여놓은 것은 '4·3을 총체적으로 조명해 그것의 진면목과 진실에 한발짝 더 접근하기 위한' 의도를 읽게 만든다.

이 작품은 8장으로 구성된 장막극이다. 외세의 침입, 멍석말이, 입산, 무장봉기, 집단학살, 우상의 파괴, 장두의 길, 골고다의 십자가 순으로 4·3이 일어나게 된 배경에서 사건 당일의 현장, 당국의 결과 처리까지 차례로 그렸다.

희곡은 서북청년단원의 고문에 마을 청년 동호가 죽는 것으로 막을 연다. "그렇게 힘센 사람들이 왜 죄없는 백성에게 빨갱이란 올가미를 씌우려는 겁니까?"란 울부짖음은 시작일 뿐이다. 그의 죽음은 또다른 죽음을 부른다. 조명이 꺼지고 무대가 바뀔때마다 등장 인물이 죽어간다.

"알기쉽게 말하면 휴전선 이남을 점령한 미군이 이 땅을 다스리겠다는 것이고 일제시대 경찰관들이 해방된 이 나라에서도 계속 경찰관 노릇을 해먹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만 봐도 이 나라는 아직 해방된 게 아닙니다. 독립된 게 아닙니다."('붉은 섬')

와세다대학 출신 상진의 선동에 마을 청년들의 마음이 움직인다. 밀고자로 몰려 죽은 성칠의 어머니가 목숨을 스스로 내던졌던 팽나무 아래서 청년들은 결의를 다진다. '한라산으로 가는 거야.' 그 팽나무는 무장대 사령관 종덕이 토벌군에게 체포돼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리듯 결박된 장소이기도 하다.

선흘리에도 백년을 훌쩍 넘긴 폭낭(팽나무)들이 많았다. 그러다 새마을운동으로 새 길이 뚫리면서 밑동이 하나둘 잘려나갔다. 알선흘로 불렸던 낙선동의 팽나무는 용케 그 시절을 뚫고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인가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지금은 나무만 덩그러니 서있다. 4·3당시 마을의 집회장소는 폭낭 앞이었다.

"4·3 때는 어느 총에 맞아죽을지 모르는 시절이었다"는 김내수씨(78·선흘리)의 말처럼 마을 사람들은 그저 흐르는 세월에 몸을 맡겨둘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7백년된 마을을 지켜준다고 믿는 할망당에 마음을 의지해왔지만 피비린내나는 싸움에 수호신을 원망한다.

"나 때문에…. 내가 이 손가락으로 가리켜서 죄없는 사람들이 죽었어. 지하에 가면 무슨 낯으로 그들을 대한단 말인가. 할망당이 있기에 우리 마을만은 지켜주리라 믿었건만…."('붉은 섬')

소개령으로 마을을 떠났던 이장이 며칠후 증오심에 불타 할망당의 제단을 부수는 장면은 4·3이 드리운 재앙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김내수씨는 "조천으로 소개했을 때 산에서 얼굴이 하얗고 예쁜 처녀를 끌고와서 동네 사람들에게 창으로 찌르라고 하는 걸 봤다. 창끝에 피가 묻지 않으면 안됐다. 차마 여자를 볼 수 없어서 고개를 돌린 채 창을 찌르더라"고 했다. 폭도 마을로 지목돼 서로가 서로에게 죽창을 겨눠야 하는 그 순간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속죄하는 맘으로 '붉은 섬'을 썼다

장일홍씨는 스스로를 과작(寡作)하는 편이라고 했다. 1985년 등단 이래 세 권의 희곡집을 냈는데 총 스무편 내외의 작품을 발표했다. 그중 절반 이상이 4·3을 다루고 있다. 가족중에 피해를 입었거나 사연이 있는것이 아닌데도 그의 작품엔 늘 4·3의 그림자가 따라다닌다.

▲서로가 서로에게 창을 겨누던 시절을 견뎌야 하는 사람들은 끝내 할망당의 수호신을 원망하기에 이른다. 키 큰 동백나무로 둘러싸인 선흘리 할망당.

그는 지금까지 4·3 5부작을 썼다. '당신의 눈물을 보여주세요', '붉은 섬', '우리를 잠들게 하는 별들의 합창', '하모니카'에 이어 최근엔 '불멸의 영혼' 집필을 끝냈다.

이중 '붉은 섬'은 '필생의 역작을 써보자'란 생각에 1년여를 들여 완성했다. 논문, 수기, 증언집, 회고록, 신문기획물 등 4·3에 관한 자료는 모조리 뒤져 읽었다. 그 기록들을 보면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도 했다. 작가는 "4·3에 대해 무지한 죄, 내 이웃의 고통과 슬픔을 외면했던 죄, 역사의 진실을 캐내는 일에 게을렀던 죄. 이 모든 죄들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희곡을 썼다"고 고백한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4·3을 개인사가 아닌 공동체 역사의 맥락에서 파악하고 싶었다. 과거사가 아닌 현재진행형의 사건이고, 수난사이면서 항쟁사임을 드러내려 했다. 그는 '붉은 섬'이 무대화될 즈음에 "이 작품이 한쪽으로 치우친 경향이 있지 않느냐고 속단할지 모르지만 이념적 편향성을 극복하는 게 4·3문학의 과제로 여겨왔다"면서 "무슨 거창한 민중사관을 떠나서 가능한 한 당시 도민의 입장에서 4·3의 진실을 올곧게 보려고 애썼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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