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사는 법](6)이주여성 상담 조옥란씨

[이 사람이 사는 법](6)이주여성 상담 조옥란씨
"함께 있어만 줘도 큰 힘이 돼요"
  • 입력 : 2009. 02.14(토) 00:00
  • 최태경 기자 tkchoi@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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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주여성 조옥란씨는 지난해부터 제주이주민센터에 정식 직원으로 채용돼 이주여성들의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사진=강경민기자

같은 처지 이주여성들 맏언니 노릇
통역대학원 진학 '문화전도사' 꿈도


"이주여성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밤이고 낮이고 달려가요. 이들에겐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거든요."

국제결혼이라는 쉽지 않은 결정에다 사랑하는 남편 하나만을 의지한 채 고향을 떠나온 수많은 이주여성들. 행복의 단상도 잠시, 모든 이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이들의 현실은 비참하기 이를데 없다.

결혼이주민센터의 조옥란(34·2005년 한국 국적 취득)씨는 이런 이주여성들에게 아픈 사연을 들어주고 조언을 해주는 맏언니같은 존재다. 옥란씨 또한 국제결혼을 통해 제주에 살고 있는 이들과 같은 이주여성이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이들을 잘 이해하고 있다.

지난 2006년 옥란씨는 자신과 같은 이주여성 친구들을 만나고 상담도 받을 겸 이주민센터를 찾았다가 우연히 상담일을 도와주게 됐다. 지난해부터는 센터의 정식 직원으로 채용돼 본격적으로 이주여성 도우미일을 하고 있다. 조선족이었던 옥란씨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모두 한국인이었다. 그래서 중국어와 한국어가 모두 능숙했고, 싹싹하고 부침성 있는 성격 때문에 상담가로 낙점된 것이다.

센터를 찾은 첫날 일을 하다 다친 중국선원들의 상담을 받고 있었다. 옥란씨는 이들과 센터 직원사이에서 통역을 해주면서 상담 봉사일과 인연을 맺게 됐다. 가끔씩 센터를 찾았다가, 또는 센터에서 도와달라는 전화가 와서 통역을 해주거나 상담을 대신해주는 식으로 시작된 상담일. 옥란씨는 이젠 센터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옥란씨는 상담의 보람보다는 폭력이나 가정형편 등으로 어려워하는 이주여성들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눈물을 흘릴 때가 더 많다.

"가정폭력으로 인해 센터를 찾는 사람이 많아요. 같은 결혼이주여성으로서 너무 안타까워요. 제 동생같았으면 당장 이혼하라고 말하고 싶어도 꾹 참죠. 현실을 객관적으로 봐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문제가 뭔지, 왜 남편이 폭력을 휘두르는지, 이주여성에게는 문제가 없는지. 상담을 하다보면 원인을 찾아내 해결하거나 갈등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경우도 있거든요."

옥란씨는 이젠 이주여성들에게 가족이나 다름없다. 이주여성들은 무슨일이 생기면 경찰이나 119보다도 옥란씨를 먼저 찾는다. "한번은 남편에게 폭행을 당했는데 경찰이나 119에 전화를 못하겠다며 연락이 왔어요. 말이 안통하니 전화해도 소용이 없다는 말이죠. 그럴 땐 제가 대신 신고한 뒤 일처리를 도와줬어요."

옥란씨는 올해 자신의 더 큰 꿈을 위해 제주대 통역대학원에 진학했다. 더 공부해 상담일은 물론 한국과 중국의 문화차이를 줄일 수 있는 '문화전도사' 역할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옥란씨는 개강을 한달 앞두고 이 꿈을 잠시 미루기로 했다. 자신의 도움이 절실한 이들을 위해, 아니 그냥 옆에 있어주기만 해도 위안이 되는 이들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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