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사는 법](13)한라산 놀이패 윤미란씨

[이 사람이 사는 법](13)한라산 놀이패 윤미란씨
"4·3은 우리가 짊어져야 할 숙명"
  • 입력 : 2009. 04.04(토) 00:00
  • 백금탁 기자 gtbaik@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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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란 놀이패 한라산 사무국장은 4월이 오면 신열이 난다. 제주 역사의 아픔 4·3 때문이다. /사진=이승철기자

20년간 마당극 통해 4·3의 아픔 풀어내
"부끄럽지 않은 역사 다음세대 물려줄 것"


"아프다. 여전히 아프다. 4·3은 죽을 때까지 짊어지고 가야할 숙명이다."

윤미란(43) 놀이패 한라산 사무국장은 매년 이맘 때면 신열이 난다. 지난 1일 함덕 한모살 문화학교에서 만난 윤씨는 4·3 평화마당극제에 올릴 연극연습에다 신열로 속앓이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윤씨는 "4·3이 가까워 오면 아플 수밖에 없다. 제주칠머리당굿 기능보유자 김윤수 심방이 말했듯이 억지로 만든 것(작품)이 아니라 역사적 현장에서 공연을 하다보니 4·3 희생자들의 원혼이 따라다녀 아플 수밖에 없다"는 말로 대신했다.

고향은 너븐숭이 대규모 학살이 일어났던 제주시 조천읍 북촌. 할아버지도 그 때 돌아가셨다. 외할아버지도 대전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윤씨의 유년은 4·3에 대한 기억으로 가득하다.

"결국, 4·3을 겪지는 않았지만 유년시절부터 생활속에서 정신속에서 성장, 대물림될 수밖에 없다. 지금보면 숙명적으로 광대 팔자다."

연극무대에 발을 들여놓은 것도 20년이 넘었다. 지난 80년대 제주대학교에 다니던 시절, 휴학중 서울에서 제주여고 동창생 윤선환씨를 만나 연극에 발을 들여놓았다. "연극이 적성에 맞을 것 같다"는 친구의 말 한마디가 그녀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복학과 함께 곧바로 마당패 동아리인 제주대 인문대학 문화패 '수리(가운데, 정수리의 의미)'에 들어갔다. 졸업하면서 '당연히' 연극의 길로 들어섰고 놀이패 한라산 입단도 그렇게 시작했다. 연극은 그녀에게 생활의 연장선이었다.

"처음에는 전사(戰士)의 마음이었다. 그러나 우리 세대는 화해와 진실을 밝히는 역할임을 알게 됐다. 4·3작품을 수년간 단계별로 하고 있다. 그중 98년도 작품인 '4월굿 한라산'이 가장 인상 깊다. 4·3을 주제로 한 첫 작품이다. 그 때 마당판에서 광대란 무엇인가를 느꼈다. 4·3 역사속에서 광대에게 주어진 판이 있다면 관객과 어떻게 소통할까 생각한 것도 그 때였다."

2007년 놀이패 한라산 대표로 제20회 전국민족극한마당에서 민족광대상을 받았다. 광대상은 올곧게 예술활동에 정진, 민족극운동에 공헌한 광대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그녀는 "광대상을 받으면서 '광대를 업으로 해라'는 느낌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녀는 욕심이 많다. 120살까지 살겠단다. 광대로서 특히 여자로서 후배들에게 '길'을 내어주고 그 길을 걸으면서 제주연극의 길이 더욱 탄탄해지길 바랐다. 유년시절에 비친 부모의 모습을 모티브로 작품을 쓰겠다고 했다. 4·3으로 고통받은 긴 세월, 부모의 한을 연극을 통해 풀어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실된, 그리고 아프지 않은 제주4·3을 다음세대에 물려주겠다는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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