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환상숲길'을 가다(5)] 제2코스-①남성대 제1대피소~5.16도로 수악계곡

[한라산 '환상숲길'을 가다(5)] 제2코스-①남성대 제1대피소~5.16도로 수악계곡
하천도 평탄하게 만들어 한라산 산악도로 연결
  • 입력 : 2009. 04.30(목) 00:00
  • 강시영 기자 sykang@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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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환상숲길 탐사대는 서귀포자연휴양림~법정사~시오름~남성대 제1대피소~수악계곡에 이르는 20km 코스를 이틀에 걸쳐 탐사하며 곳곳에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임도와 '하치마키' 도로로 추정되는 구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귀포자연휴양림에서 남성대 제1대피소에 이르는 제1코스에서 하치마키 도로의 원형이 가장 잘 남아있는 곳은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산림연구소의 시험림을 관통하는 숲길이다.

마치 자갈도로을 연상시키는 이 숲길은 자동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의 넓은 폭을 가지고 있다. 약 5m 내외 너비의 이 길은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흔적이 역력하다. 법정사에서 시오름을 잇는 숲길 중간중간에도 인위적으로 사람이 만든 길의 흔적이 남아 있다. 지름 30~40cm 정도 크기의 돌들을 길 위에 놓고 평탄작업을 한 것으로 추정되며, 돌에 연장을 이용해 가공한 흔적이 있는가 하면 일명 '야'라고 하는 돌을 깨부수는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쇠로 만든 기구의 일부분도 발견됐다.



남성대 제1대피소와 수악계곡 및 5·16도로변을 잇는 제2코스에도 임도와 하치마키 도로를 추적할 수 있다. 작은 계곡을 잇기 위해 돌로 매운 뒤 평탄하게 만들어 사람과 기구가 움직일 만한 길도 열었다. 또한 대부분 숲길 구간에서 길의 한쪽 부분들이 돌이 쌓여 있고 마감처리된 것이 확인됨에 따라 자연적으로 유실되기 이전에는 도로로 사용된 적이 있음을 반증해 주기도 한다.

일제가 1937년 제주도개발계획을 통해 계획했던 한라산 산악도로인 '환상선(環狀線)'의 도로 폭은 10m 규모다. 일제가 추진했던 '환상선'은 미완의 도로로 추정된다. 이 개발계획은 1937년부터 10개년 계획으로 추진됐으나 그 전에 일제가 패망한다. 때문에 탐사대가 가고 있는 환상숲길 자체가 하치마키 도로와 동일시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제주도지'(2006)에 따르면 '제주의 산악도로가 예로부터 주민의 방목과 산림 벌채 등을 위해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대목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한라산과 중산간 여기저기서 확인되는 크고작은 산악도로의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기는 간단치 않은 일이다. 숲길은 자연적인 풍화작용과 폭우 때 물길로 변하면서 유실되거나 수목으로 뒤덮혀 있는 구간이 많다. 아직 체계적인 조사와 연구가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환상숲길은 말 그대로 환상적이고 매력적인 요소만을 품고 있지는 않다. 이 공간에는 제주인들이 겪었던 뼈아픈 역사의 현장이 생생히 남아 있다.

하지만 환상숲길은 '하치마키'도로만을 추적하지는 않는다. 이 도로는 환상숲길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많은 구간은 지금은 송전철탑이 지나간다. 치유의 숲길에서 고압전류가 흐르는 송전철탑 길을 걷도록 강요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 될 수 있다. 한라산 환상숲길은 한라산과 중산간의 다양한 생태계와 역사문화자원을 아우른다.

/특별취재팀



[전문가 리포트] '하치마키' 도로 원형 찾기

일제말 산간지대 빙 둘러 건설

생생한 역사.문화현장 되돌려야


'하치마키'란 일본어로서, 일본 무사들이 무장하면서 머리를 천으로 감고 그 위에 투구를 쓸 때 그 머리 둘레를 감은 천을 말한다. 4·3사건 때 토벌작전을 벌이던 군인들이 적과 아군을 구별하기 위해 철모에 둘렀던 흰 띠를 '하치마키'로 불렀다고도 한다. 일제 훈련을 받은 건국 초기 군 장교들이 일본식 용어로 사용했던 것이다. 일제 말기 7만여 명의 일본군이 제주도에 주둔함에 따라 진지 구축에 강제 동원되었던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제주도 산간지대를 빙 둘러서 군용도로인 '하치마키 도로'를 만들었다고 한다. 결국 제주도민들에게 하치마키 도로는 대개 군사적 용도로 인식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일제는 1937년도에 총독부 주도로 '제주도개발사업계획'을 기획하였는데, 이 개발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중산간 농경지대와 삼림지대와의 경계선을 따라 한라산 중허리를 일주하는 간선도로를 10년에 걸쳐 개통하는 사업이 결정되었다. 일제는 이 산간 일주도로를 공식적으로 '환상선(環狀線)'으로 명명하였고, 달리 '한라산 중복(中腹) 일주도로'라고도 하였다. 이 환상선은 3등급 신설 도로로서, 총 연장 110㎞, 도로 폭 10m으로 하여 총 공사비 1,603,000원이 책정되었다. 또한 하천으로 끊어진 도로를 연결하는 시설물을 22군데 설치하고자 계획하였다.

일제는 또한 이 개발계획을 통해 환상선과 해안지대·중산간의 주요 마을을 연결하는 14개 노선을 신설함으로써 한라산의 삼림과 버섯 등 산림자원과 목장지대의 축산물을 본격적으로 침탈하려고 하였다. 환상선은 현재까지 중산간 지역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고, 환상선과 마을과의 연결선 또한 현재의 도로망과 비슷한 형태로 남아있다.

10년 계획으로 추진되던 환상선의 개설 과정에서 태평양전쟁이 발발함으로써 이 도로는 군사용도로 전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일제 말기에 강제 동원되어 만든 군용도로인 하치마키 도로는 이 환상선을 기본으로 하여 개설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앞으로 한라산 숲길을 탐사·추적함에 있어서 환상선을 축으로 하여 다양한 목장길, 임도, 잣성, 화전길, 표고밭길 등이 상호 연결되는 생생한 역사·문화의 길을 되살렸으면 한다. 그러기에 하치마키 도로로 불려온 환상선의 복원이 더욱 중요한 시점이다.

<박찬식.제주4·3연구소장>



■ 하치마키 도로에 대한 고찰

제주도 수탈.병참로 규명 필요

'제주도지'(2006년) 산업경제편에는 한라산의 '산악도로'를 언급하면서 '하치마키'를 거론하고 있다. 제주의 산악도로는 예로부터 주민의 방목과 산림 벌채 등을 위해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나, 일제 강점기말 일본군의 대미(對美) 전쟁의 전초기지로서 군사행동을 위해 물이 있는 곳을 골라 개설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진관훈 박사(제주경제사 전공)는 1937년의 '제주도개발계획'에 대한 논문에서 한라산의 산악도로인 '환상선'을 해석하고 있다. 진 박사는 "일제가 수립한 제주도개발 10개년 계획에는 중산간 일대의 산림과 버섯 등 임산자원을 산지항까지 원활히 수송하기 위해 건설한 일명 '하치마키' 도로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일제가 '환상선'으로 명명한 이 도로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중산간 일대를 한 바퀴 순환하는 도로"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가 펴낸 한라산총서(2006년)의 '한라산의 인문지리'편에는 이 하치마키 도로는 주로 임산자원을 침탈하기 위해 만든 임도(林道)의 성격이 강하며, 한라산을 중심으로 해발 500~700m 일대를 마치 머리띠 모양으로 한바퀴 순환하는 도로라고 밝히고 있다. 현재 서귀포시 제2산록도로 북쪽 송전 철탑을 따라 위치하고 있으며 그 흔적이 남아 있다고 덧붙이고 있다.

또 항·포구와 연결된 도로가 개설됨에 따라 한라산 임산자원과 연근해 수산자원들이 보다 쉽게 일본으로 반출됐다는 점에서 볼 때 일제의 치밀한 제주도 수탈계획에 입각해 진행된 것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덧붙여서 이 도로가 군사용 목적에서 건설된 작전도로인지 아니면 한라산의 임산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만들어진 임도인지는 보다 체계적인 조사를 통한 규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이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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