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세계유산을 빛낸 사람들](11)-④기념사업 어디까지 왔나

[제주 세계유산을 빛낸 사람들](11)-④기념사업 어디까지 왔나
제2부 석주명과 제주
30여년간 숱한 논의… 흉상 건립 고작 답보상태
  • 입력 : 2009. 07.01(수) 00:00
  • 강시영 기자 sykang@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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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명 선생이 1943년부터 2년여간 머물렀던 옛 경성제대 부속 생약연구소 자리인 제주대학교 아열대농업연구소. 석주명은 이곳에 거주하며 제주학의 토대를 닦은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사진=강경민기자 gmkang@hallailbo.co.kr

서귀포문화사업회 등 민간차원 사업 주도
2007년 각계 참여 기념사업회 공식 발족
'제주학 거봉' 평가 불구 기념사업 '역부족'


제주에 무한애정과 제주학 연구의 기틀을 다졌던 석주명 선생에 대한 기념사업은 여전히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동안 민간 중심의 노력이 없지 않고 현재도 진행되고 있지만 가시적인 후속조치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가 생전 2년 남짓 머물며 숱한 역작을 남긴 무대였던 옛 경성제대 부속 생약연구소 자리인 제주대학교 아열대농업연구소 인근 도로변에 초라한 반신상 하나를 세운게 유일할 정도다. 이후 제주도나 아열대농업연구소 관리 주체인 제주대측도 석주명 기념사업과 후학들에게 귀감이 될만한 어떤 성과물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제주에 큰 족적을 남긴 석주명 기념사업에 대한 논의는 주로 민간차원에서 전개돼 왔다. 지난 1981년 석주명의 30주기를 맞아 '석주명선생 추모사업추진회'가 학술강연회를 개최한 이래 50주기였던 2001년에는 제주전통문화연구소 주최로 석주명 선생의 업적을 재조명하는 세미나를 마련했다. 한라일보 유적지표석세우기추진위원회는 1999년부터 석주명선생 등에 대한 기념비 건립을 추진해 왔다.

2003년 6월 한국곤충분류연구회, 제주전통문화연구소, 한라일보사 문화유적지표석세우기추진위원회 후원으로 제주도와 서귀포시는 서귀포시 토평동 소공원에 석주명의 흉상과 기념비를 세웠다. 이 때 서귀포시청 대강당에서는 '제주학의 선구자, 나비박사 석주명 선생의 삶'을 주제로 학술세미나가 열렸다. 당시 강상주 시장은 세미나 인사말을 통해 석주명을 '제주학의 거봉'으로 표현하며 "기념식과 세미나를 기점으로 앞으로 선생의 위대한 학술적 가치가 세계인이 동경하는 꿈의 도시인 서귀포시에서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각종 사업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소설가 오성찬은 "석주명이 제주 재임시에 유채와 겨자 씨앗을 들여다가 시험재배를 했는데, 지금 유채꽃 큰잔치까지 벌이는 유채 씨앗이 거기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도민의 생업마저 도운 셈"이라고 강조하면서 이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제주사회의 현실을 안타까워 했다.

제주대 윤용택(철학과) 교수는 토평통 네거리에 석주명 기념비가 세워진 직후 제주문화포럼 소식지(7월호) 기고에서 기념관 건립을 제안하고 나섰다. 윤 교수는 이 글에서 "세상이 제주도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할 때, 그는 제주도의 가치를 깨닫고 수많은 자료를 수집해 세상에 알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제는 제주도가 석주명 선생에게 보답할 때가 되었다. 제주도가 석주명의 위대함을 알리는 진원지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그가 체류했던 서귀포에 석주명 기념관을 건립할 것을 제안한다"고 했다.

소설가 오성찬은 석주명의 생애를 다룬 실명 장편소설 '나비와 함께 날아가다'를 펴냈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제주의 언어, 전설, 민요, 한라산 등 섬과 섬사람들의 독특함에 매료된 '나비박사'의 여정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2004년 총선에서 서귀포·남제주 선거구의 김재윤 후보는 '석주명선생기념박물관' 건립 지원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석주명이 제주도에 끼친 공헌에 걸맞게 기념박물관 규모로 사업을 펼치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었다.

이후 석주명 기념사업을 위한 논의는 서귀포문화사업회(회장 이석창)가 주도하기 시작했다. 이 단체는 2005년 10월 난대산림연구소에서 '석주명선생 기념사업을 위한 세미나'를 열었다. 세미나에서 윤봉택 서귀포시 문화재담당은 아열대농업연구소의 관리주체인 제주대를 겨냥했다. 그는 "2003년 (기념관 건립) 부지선정과 관련해 제주대학교와 무상임대 요청 등에 대해 협의했으나 제주대가 이를 거부했다"며 "앞으로 기념사업 추진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인 부지관련 문제를 해결해야만 이 사업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문제는 지금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서귀포문화사업회는 이로부터 1년 뒤 석주명 선생의 기념사업을 펼칠 민간단체 출범을 주도한다. 2006년 12월 제주대 글로벌회관에서 발기인대회가 열렸다. 석주명기념사업회는 2007년 3월24일 서귀포시 소재 난대산림연구소에 창립총회와 함께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총회에서는 남상호 대전대 부총장과 서귀포문화사업회 이석창 회장, 제주대 양영철 교수가 공동의장으로 추대됐다. 이 사업회가 발족한 것은 2008년 석주명 탄신 100주년을 앞둬 기념사업을 체계적이고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해서였다.

2008년은 석주명 탄신 100주년이 되던 해였다. 서귀포문화원은 석주명의 제주학 연구총서 6권을 묶어 새롭게 발간했다. 10월에는 석주명기념사업회가 '나비, 그리고 아름다운 비행'이란 주제로 기념행사를 열었다.

기념사업회는 이어 12월에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석주명 탄신 100주년 기념 세미나를 개최했다. 제주대 김태일(건축학부) 교수는 "석주명의 연구 거점이었던 토평동 아열대농업연구소를 보존하고 진정한 기념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최낙진(언론홍보학과) 교수도 "선생의 학문관과 연구방법, 그리고 제주도에 대한 애정을 공유하고 계승하는 작업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이 세미나에 참석한 제주도 관계자는 "아열대농업연구소 건물을 국가 등록문화재로 지정하는게 바람직하며, 이를위해 제주대학교와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혀 주목을 끌었다.

[석주명의 제주도 총서]기념사업 올해가 고비

아열대농업연구소 등록문화재 '관건'…제주도·제주大 전향적 자세 보일때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재위원회는 제주대 아열대농업연구소를 등록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한 움직임에 제주도 문화재위원회도 가세하고 나섰다. 문화재위원들은 2009년 5월 토평동 연구소 현지를 방문, 건축물의 형태와 건축양식, 역사적 가치 등에 의견을 교환한 뒤 아열대농업연구소를 문화재로 등록한 뒤 기념관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

건축가인 김석윤 위원은 "석주명 선생의 제주학 연구활동 공간이었던 아열대농업연구소 건물은 그동안 보수가 이뤄졌지만 일제시대 근대 건축양식의 큰 골격을 유지하고 있으며 특히 석주명 선생이 남긴 업적 등 역사성을 고려할 때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밝혔다.

문기선 위원도 "아열대농업연구소는 석주명 선생의 제주학 연구의 산실이었다는 점만으로도 문화재적 가치가 있으며 등록문화재로 등록해 기념관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 위원은 또 "아열대농업연구소를 석주명공원으로 확대하는 방안까지도 적극 논의할 만하다"고 주장했다.

제주도는 문화재위원회의 의견을 존중, 제주대측에 아열대 농업연구소를 등록문화재로 추진하는데 따른 협조요청을 했다. 그 공이 제주대로 넘어간 것이다.

그동안 제주사회에서는 아열대농업연구소의 소유주인 제주대측의 행태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높여 왔다. 제주지역의 대표적 학문연구의 본산인 제주대가 어떤 기관이나 단체보다 석주명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이를 알리는데 발벗고 나섰어야 했는데도 제주대가 과연 그런 모습을 보여 왔는가에 대한 비판이다. 문화재당국의 요청에 앞서 스스로 그 곳을 석주명기념관으로 만들고 학생들에게 그 열정과 자취를 본받도록 했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제주도의 태도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대학측의 결정만 기다릴게 아니라 그 필요성과 정책적 중요성을 설득하기 위한 노력을 얼마나 기울여 왔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30년 가까이 제주사회에 담론으로 줄기차게 제기돼 온 석주명 기념관 등 기념사업이 올해 열매를 맺기 위한 단초를 마련할 수 있을지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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