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섬 박물관 순례Ⅱ](15)소암기념관

[제주섬 박물관 순례Ⅱ](15)소암기념관
무명빛 종이위 푸른섬 바다빛 출렁
  • 입력 : 2009. 07.24(금) 00:00
  • 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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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출신 서예가 소암 현중화 선생의 창작산실을 품고 건립된 소암기념관은 "글씨 공부보다 마음공부에 힘쓰라" 했던 예술가의 가르침이 조용히 묻어나는 곳이다. 월요일 아침 기념관을 찾은 관람객이 상설전시실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강경민기자

서귀포 출신 서예가 소암 현중화 창작산실에 건립
"글씨 공부보다 마음 공부 힘쓰라" 조용한 가르침



무명빛 종이위에 짠내음이 실리지 않았을까. 때로 붓은 끝간데 없이 너른 바다를 헤쳐가는 외로운 배였을 수도 있겠다. 두둥실 저 바다와 푸른 섬을 늘 눈에 담고 지냈으니 말이다. 서귀포시 서귀동 소암기념관 한켠 '조범산방(眺帆山房)'에 오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동산길 언덕배기에 들어선 조범산방에 서면 서귀포 앞바다가 이마에 걸린다. 소암기념관을 낳은 소암 현중화(1907~1997)선생은 서귀포시 법환동 출신이지만 그곳에서 20년을 보냈다. '서귀소옹'으로 자호(自號)하고 글씨로 즐거움을 누렸던 생애 말년의 먹향이 배어난다.



지난해 10월 문을 연 소암기념관은 제주출신 예술가를 기리는 문화공간이면서 전국에서도 몇 안되는 서예 박물관이다. 소암의 거처를 품고 지었다. 그래서 여느 공간에 있는 전시실 뿐만 아니라 창작실이 더해졌다. 방의 주인이 잠시 외출을 떠난 것처럼, 소암이 머물던 조범산방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방에 놓인 연습지를 보면 이른바 '소암체'가 어디서 연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고전에 대한 쉼없는 천착과 연습은 소암 서예세계의 밑바탕을 이룬다. 글씨가 마르면 다시 그 위에 글씨를 써나간 탓에 먹판이 되어버린 화선지는 흡사 추상화처럼 보인다. 소암은 그렇게 연습지가 수북이 쌓이면 그걸 들고나가 태우곤 했다.

'近來傳得安心法 萬壑松風枕上聞(근래에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법을 터득했더니 온갖 골짜기 바람이 베개 위로 들려오네)'. 소암이 써놓은 글귀중 하나다. 기념관엔 소암의 어록이 붙어있다. 평소 제자들에게 들려줬던 말이다. "자연은 모든 예술의 본이다. 그것은 자연 자체가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깊고 오묘하고 다층적인 의미체이기 때문이다." "서예엔 스승도 제자도 없다. 글씨 공부보다 마음 공부에 힘써라."



전시실을 휘돌아 감는 소암의 작품은 새삼 글씨를 쓰는 과정이 곧 마음을 다스리는 일임을 일깨운다. 무릇 붓을 잡은 이들이라면 대가연하고, 남을 헐뜯고, 속임수를 쓰는 일이 없어야 하기에 그렇다. 내려긋는 한 획에 헛된 욕망을 떨쳐내고, 분노를 씻어낼 일이다.

기획전시실에선 지금 대학생 경서대회 입상작을 선보이고 있다. 청년 서예에 희망을 걸었던 소암의 뜻을 이어 기념사업회가 치르는 대회다. 관람객이 한달 1000명을 조금 웃돌고 있는 현실에서 경서대회만이 아니라 박물관의 특장을 살린 문화예술교육이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한자에 관심이 있는 아이들이 늘고 있는 만큼 소암기념관의 콘텐츠는 경쟁력이 높다. 서예는 문자적 조형미를 갖춘 느림의 예술이다. 뒤돌아볼 여유가 없는, 속도에 물린 어른들에겐 쉼터가 될 수 있다.

소암을 말하는 지역의 연구자가 많아져야 한다. 소암을 '지방의 서예가'로 가두자는 게 아니다. 제주서예의 역사를 들여다보고 그 미래를 그려가기 위해서다. 소암기념관부터 그 일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오전 9시부터 밤 8시까지. 홈페이지는 없다. 760-3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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