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25시]'잔인한 4월'이 되지 않기를

[편집국 25시]'잔인한 4월'이 되지 않기를
  • 입력 : 2010. 04.01(목) 00:00
  • 이현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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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4월이 올해에도 어김없이 다시 돌아왔다. 왜 하필이면 4월일까. 4월이 어떻게 '잔인한'이라는 수식어를 달게 됐을까.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에 귀화한 현대시의 거장 T S 엘리엇의 장편시 '황무지'에서 '잔인한 4월'은 시작됐다. 문제의 구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추억과 욕정을 뒤섞고/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흔히 '황무지'를 두고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황폐함과 현대문명에 갇혀 생명력을 잃은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린 것이라고 평하곤 하지만 국내에서는 4월에 정치·역사적 사건이 일어나면서 '잔인한 4월'의 시구가 인용되기 시작했다.

올해는 칠흑같이 어둡고 잔인한 4월을 맞고 있을 사람들이 어느 때보다 많을 듯 하다. 62주년을 맞은 제주4·3 유족들에게도 올 4월은 잔인하게 다가온다. 전직 대통령의 '사과'까지 있었지만 최근에는 '제주4·3'을 왜곡하는 색깔론 공세가 강화되고 새 역사 교과서 집필기준에서 4·3부분을 삭제하려는 움직임도 있는 등 '4·3 흔들기'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달 침몰한 해군 초계함 천안함의 구조작업을 초조하게 지켜보면서 기적처럼 가족들이 살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도 어느 해보다 잔인한 4월을 맞이하고 있다. "제가 대신이라도 죽겠습니다. 제발 우리 아들 살려주세요"라고 울부짖는 가족들의 오열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실종자 수색작업 중 순직한 고 한주호 준위의 가족도 그러할 것이다. 살신성인의 정신을 온몸으로 보여준 한 준위의 희생에 대한 보답은 누가 뭐래도 46명의 실종자 가운데 한 명이라도 생존자가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뿐인가. 지금 이 시간에도 생사를 넘나들며 힘겹게 구조활동을 하는 구조대원들도 어느 때보다 잔인한 4월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잔인한'4월은 바로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다면 '희망적인' 4월도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올해는 4·3예비검속 사건 6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31일 증언본풀이에서 고난의 시간을 눈물지으며 털어놓는 이들은 더 오래되기 전에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모든 이들이 바라는 것처럼 더이상 '잔인하지 않고 희망적인' 대반전의 4월이 되기를 꿈꿔본다.<이현숙 문화체육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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