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떵 살암수과]'오뚜기 인생' 고순현씨

[어떵 살암수과]'오뚜기 인생' 고순현씨
"넘어져도 일어서는 것이 인생"
연쇄부도 극복 후 연매출 14억 양돈장 운영
  • 입력 : 2010. 08.19(목) 00:00
  • 표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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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 넘어졌지만 6번 일어섰다. 사업이 망할 때마다 알거지가 됐지만 희망만은 놓지 않았다. 자타가 공인하는 오뚜기인생을 살아온 고순현(62)씨의 이야기다.

맹호부대원으로 베트남에 참전해 사선을 넘나들던 고씨는 72년 1월 전역 후 운수업에 뛰어들었다. 30만원짜리 '코로나' 택시 1대를 마련해 지입차주가 된 그는 운전기사 1명을 고용해 교대로 택시운전을 했다. 당시 결혼도 했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고행길이었다. 1년간 교통사고 일곱 번을 내 결과적으로 200만원 손해를 보고 손을 떼야 했다.

73년 빈털털이가 된 그에게 마을회관 방송이 들려왔다. 양돈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정부가 농협을 통해 싼 이자로 30만8000원을 대출해준다는 것. 대출금으로 제주시 도두동 제주공항 밑 해안가쪽에서 양돈사업을 시작했다. 돈을 아끼려고 직접 돈사를 짓고 다른 양돈장에서 사료값이 아까워 제대로 먹이지 못하는 어미돼지 100두를 사들였다. 그러나 젊은 혈기만 믿고 뛰어들었던 양돈사업도 오래가지 못했다.

2년만에 다시 사업에 실패한 그는 돼지 운송업에 뛰어들었다. 삼륜차를 장만하고 농장에서 돼지를 구입해 식육업자에게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제법 돈을 만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산북지역 식육점을 상대로 영업을 했지만 이후 산남지역까지 거래처를 확대했다. 한창때는 거래처가 30개소에 이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식육점이 문제였다. "당시만 해도 식육점들은 마진이 낮아 '저울 도둑질'을 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이 나돌 때였는데 외상을 텄던 업자들이 야반도주하기 시작해 궁핍한 생활로 돌아갔지요."

그래도 보고 배운 게 있는지라 "백정자식 안둔다"고 반대하던 부모님을 설득해 79년 식육점을 차렸다. 식육점업의 모임 지부장에도 취임해 이번에는 성장가도를 달리는 듯 했는데 조합공금을 유용한 혐의로 구속됐다. "판공비가 전혀 없어 개인돈으로 운영했는데 시기했던 사람이 있었나봐요. 나중에 대한민국 검찰총장까지 한 당시 검사에게 무고를 주장했는데도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어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알거지가 됐다.

다행히 제주시 해안동에서 돈사를 운영하던 지인이 외상으로 돈사를 넘겨줬다. 86년 200㎡ 남짓한 창고 하나에 돼지 30두로 재기에 시동을 걸었다. 지금 그가 운영하는 제일농장은 돈사만 2500㎡ 면적에 흑돼지로만 2500두로 늘었다. 5년 전 '돈열병'으로 키우던 돼지 2000마리가 싸그리 폐사해 12억원의 빚을 졌지만 반쯤 갚았다. 현재 1년 매출액만 14억원 정도여서 이 추세대로라면 3~4년이면 남은 빚도 청산할 수 있다.

요즘은 살 만하냐고 물으니 최근 치른 집안 대사를 예로 들며 대답을 대신했다. "작년 5월 30일부터 올해 4월 10일까지 딸아들 넷을 결혼시켰어요. 공교롭게도 다 짝을 데리고 오길래 해버렸죠." 지난해까지 월남참전맹호부대제주도전우회 회장을 지냈고, 지금은 제주양돈농협 이사로 활약 중이다. 이제 만족할 만하지만 아직 부족한 게 있다. "소년소녀가장 등을 찾아 돕고 싶어요. 아직도 빚은 있지만 조금씩 도와주는 것은 가능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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