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춘 칼럼]낮은 데로 임하는 삶

[김계춘 칼럼]낮은 데로 임하는 삶
  • 입력 : 2012. 01.10(화) 00:00
  • 글자크기
  • 글자크기
몇해 전 주변의 성화로 뮤지컬 '이마고데이(하느님의 모상)'를 관람했었다. 박해자에서 순교자로 변모한 사도(使徒) 바오로의 일생을 엮은 뮤지컬이었다. 공연에 특별한 관심이 없던데다 무대도 전용극장이 아닌 연동성당이어서 별다른 기대를 걸지 않았다. 하지만 그 생각은 이내 찬사로 바뀌었다. 구성과 연출이 탄탄한데다 배우들도 열연했다. 다소 비좁은 무대가 아쉬울 뿐이었다.

'이마고데이'의 감동은 지난해 말 신성여고에서 공연된 연극 '바보 추기경'으로 이어졌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일대기를 담은 연극은 신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관람하는 가운데 큰 울림을 주며 성황리에 끝났다. 어떤 종교적 의미를 전달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다만 번안극(飜案劇) 등으로 여겼던 두 작품의 원작자(原作者)가 의외의 인물로, 실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컸기 때문이다.

지난 토요일자 본보 '어떵살암수과'에 소개된 현미혜씨(45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가톨릭신자(세례명 레지나)인 현씨는 전문 작가도, 그렇다고 작가 지망생도 아니다. 제주시청 세무2과에 근무하는 그녀는 책을 많이 읽고 영화와 연극보기 등을 좋아하는 지극히 평범함 직장인이다. 더욱이 그녀는 지체2급으로 몸도 불편하다. 지난 2003년엔 암수술마저 받아 현재도 병마와 힘겹게 싸우고 있지만 늘 밝게 웃으며 활달하게 살고 있다.

사도 바오로 탄생 2000주년을 기념한 뮤지컬 '이마고데이'나 연극 '바보 추기경'도 '문화사목'을 하는 신부(현요안·중문성당 주임)인 동생의 부탁이 있었기에 썼다고 한다. 자기가 처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굳은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바보 추기경'을 쓰면서 스스로도 많은 걸 느꼈다. 극본을 쓰기 위해 간접적으로 접한 추기경은 '소금'과 같은 존재였다. 녹아 없어지는 소금처럼 자기 역할을 다하면서 세상과 사람 속에 스며드는 모습은 큰 가르침이었다. 김 추기경처럼 낮은 데로 임해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에게 조그마한 희망이나마 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 그녀의 소박한 꿈이다.

우리는 지금 '1등만을 꿈꾸는 세상'에 살고 있다. 가정이나 학교, 사회 모두 '1등'을 선호한다. 각급 학교 급훈(級訓)도 이런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엄마가 보고 있다' '담임이 뿔났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적들의 책장은 넘어가고 있다'등등. 심지어 '10분 더 공부하면 마누라가 바뀐다'는 급훈마저 버젓이 존재한다.

인의예지(仁義禮智) 등으로 대변되던 지난날의 교훈적인 급훈은 눈을 씻어도 찾아볼 수 없다. 하나같이 '경쟁' 일색으로 가치관의 전도(顚倒)가 그야말로 막장 드라마를 방불케 한다. 이 대열에서의 탈락은 곧 이 사회에서의 낙오를 의미하기에 죽자살자 덤비는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사회문제로 급부상한 일선 학교의 '왕따'와 '자살'로 이어지는 비극적인 현상도 이의 연장선상이다. 과연 누가 이 비극(悲劇)을 만들고 있는가. 아이들을 탓하기에는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 너무나 크다.

'1등'만을 바라보고 추종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다 높은 곳이 아니라 좀 더 낮은 곳으로 임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현미혜씨의 삶이 주는 교훈도 이와 같다. '미친 질주'를 막기 위해서라도 사회지도층을 비롯한 모두의 각성(覺醒)과 성찰(省察)이 무엇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논설실장>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331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