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의 소설 '마이너리그'는 58년 개띠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2001년 소설이 나왔을 때 신문들의 서평 제목은 이랬다. '58년 개띠들의 변두리 인생' '삼류에게 내미는 연민의 손길' 등등…. 출판사 서평도 '패자부활전 없는 세상에 던져진 대한민국 보통 남자들의 인생유전'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58년 개띠'가 갖는 이미지는 매우 독특하다. 파란만장(波瀾萬丈)한 한국의 현대사를 비슷하게 살아왔건만 57년 닭띠나 59년 돼지띠(은희경도 돼지띠다)를 거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유독 '58년 개띠'만이 무슨 관용구처럼 붙어다닌다. 58년 개띠인 필자도 그 이유와 원인을 알기 위해 그동안 사계(斯界)의 권위자들과 몇 차례 인터뷰를 해봤다. 하지만 단편적인 추측성 대답만 들을 수 있었을 뿐, 똑부러지는 결론은 없었다.
지난주 서점에 들러 책 구경을 하다가 눈길이 꽂힌 제목이 있었다. 월간조선 12월호의 심층취재 '58년 개띠의 한국 공간사(空間史)'가 바로 그것이다. 여기선 '58년 개띠'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궁금했다. 별책부록도 없는 책을 1만3000원이나 주고 사서 읽어봤다.
기자는 서울 종로와 광주 금남로, 대구 동성로 등을 뛰어다니며 취재한 결과를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58년 개띠의 머릿속에는 '공간'과 관련한 많은 추억이 있다. 그 공간에는 개발독재 및 압축성장의 편린(片鱗)들이 가득하다. 그들은 끌어주는 선배 흔치 않고, 밀어주는 후배 찾기 어렵던 변화의 시대에 일찍부터 혼자 크는 연습을 했다. 자긍심인지 자존심인지 모를 배포 하나로 말석이나마 자기 공간을 버텨냈다."
베이버부머(6·25전쟁 이후 1955~63년 사이 태어난 세대)의 대표격인 58년 개띠들은 말 그대로 '개 같은 인생'을 살았다. 사람이 많다보니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학교를 다녔고 혹독했던 박정희 정권 아래 청춘을 보냈다. '5·18' 당시는 피 끓던 데모대의 선봉에서, 혹은 진압군(鎭壓軍)의 일원으로 상당수가 참여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사회인이 되어서는 가정보다 회사에 충성하는 일벌레로 살다가 마흔 들어서는 IMF 경제위기를 맞았다. '사오정(45세 정년)'과 '오륙도(56세까지 회사 다니면 도둑놈)' 신세도 이들 몫이었다.
58년 개띠는 '나'보다 '우리'가 우선인 통념 속에서 누군가의 아들로, 또는 누군가의 아버지로 살아 왔다. 그리고 이제 자리에서 밀려났거나 은퇴를 앞둔 경계선(境界線)에서, 한편으론 부모를 봉양하고 또다른 한편으론 취업난에 허덕이는 자녀들을 보며 먹먹한 가슴을 부여안고 있다.
동일한 기억과 체험을 공유하는 집단의 가장 큰 특징은 결속감이다. 그래서일까, 58년 개띠들의 끈적함은 결속력 강하기로 유명한 호남향우회와 고대교우회, 해병대전우회에 못지 않다. 전국 어느 술자리에서 생면부지를 만나더라도 금방 친숙해진다. 섹스 심벌인 샤론 스톤이나 마돈나 등 외국의 58년생들을 규합 '58 세계동지회'를 만들자는 우스갯소리도 곧잘 한다. 그게 허(虛)한 속을 감추려는 말인 줄 서로가 뻔히 알면서도….
개띠 시인 오민석은 '개 같은 날들의 기억'이란 시에서 "개들이여, 개 같은 세상에서, 우리가 만날 개 같지 않을 날들은 언제쯤 올 것인가…"라고 읊었다. 오늘도 '왜 하필 58년 개띠인가?'에 대한 똑부러진 해답(解答)은 찾지 못했다. <미디어본부장 겸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