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제주의 들꽃마다에는 '4·3의 아픔'이 있다"고 말했다. 김석교 시인의 <유채꽃>에도 이런 아픔이 배어 있다. "눈물부터 앞세워 4월을 적시는구나/가시밭길 헤맸던 님들 이맘때 되살아나/오늘은 어디로 갈까, 망설이는 봄날을/꽃 냄새 피 냄새 풍기며 절뚝거리며/깔깔깔 웃다 머리 풀고/돌담 아래 쓰러지던 누이들아"
어김없이 돌아온 4월, '미완(未完)의 역사'인 제주4·3도 올해로 64주년을 맞았다. 지난 2000년 4·3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4·3' 청산은 숨가쁘게 이어져 왔다. 진상조사보고서 발간을 비롯 노무현 대통령의 대도민 사과 등 정점(頂點)으로 치닫던 흐름은 MB정부가 들어서면서 주춤해졌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번도 위령제에 참석하지 않을 정도로, 정부의 무관심에다 일부 극우세력의 잇단 4·3역사 흠집내기 등에 발목이 잡힌 것이다.
제주4·3사건 희생자위령제봉행위원회가 '퍼져라 4·3의 진실, 펼쳐라 평화의 나래'를 올해 위령제 주제로 내세웠지만 분위기는 여느 해와 사뭇 다르다. '화해(和解)와 상생(相生)'으로 대변되던 4·3정신도 시들해졌다. 그 이면엔 '제2의 4·3'이라 불리는 강정해군기지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사람들이 '강정'에서 '4·3'을 떠올리는 것은 60여년 전과 흡사한 정부의 '무모함'에서 비롯된다. 현재 해군기지를 둘러싸고 자행되는 공권력(公權力)의 행태는 4·3 당시와 꼭 닮았다. 해방 이후 혼란의 와중에서 좌와 우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수많은 양민이 '이념'이란 굴레를 씌운 공권력에 의해 무참히 희생됐다. 3만여명으로 추산되는 인명피해는 한국 현대사에 있어 6·25전쟁 다음의 최대 참극이다.
이런 '오욕(汚辱)의 역사'가 지금 강정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국가안보와 국책사업이란 명분 아래 주민들을 윽박지르며 범법자로 내몰고, 지역의 구심체인 구럼비 바위마저 마구 깨부수는 중이다. 60여년 전 '4·3의 망령(妄靈)'이 다시금 제주땅에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천주교제주교구 강우일 주교는 지난달 29일 "제주는 4·3을 교훈으로 군사기지가 아닌 평화(平和)의 전초기지가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사)제주4·3연구소가 주관한 전국학술대회 기조강연(제주-평화의 섬으로 가는 여정)을 통해서다.
강 주교는 "60년 넘도록 여전히 '사월' 속에 갇혀 있는 제주를 '사월' 밖으로 끌어내야 한다"며 "4·3의 역사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기에 결코 침묵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비극의 기억으로만 가둬둔 사월을 제주가 아닌 더 넓은 세상에서 역사의 교훈으로 남을 수 있도록 더 힘차게 끌어내야만 무력으로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환상과 망상을 깨고, 수많은 희생으로 피 흘린 제주에 '죽음의 성채(城砦)'를 건설하려는 행위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4·3' 64주년을 맞은 제주섬은 평화의 바람이 불어 희망을 노래하길 꿈꾸고 있다. 그러나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린 사월의 첫 날, 서귀포시 강정마을에는 꽃비 대신 '최루비'가 내렸다. 이게 60여년 전의 시공(時空)과 맞닿아 있는 강정의 현실이다.
'길위의 시인' 김경훈은 이렇게 외치고 있다.
"누가 감히 강정을 4·3 아니라고 말하는가/4·3에서 평화와 인권을 배웠다는 이들이여/인권이 낭자히 유린되고 평화가 처참히 깨지는데/왜 강정은 4·3이 아니라고 하는가" <김계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