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 이론 중에 '침묵의 나선(螺線) 이론'(Spiral of Silence Theory)이 있다. '자신의 의견이 소수 의견이라고 생각되면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것을 꺼려 침묵하게 된다. 그러면 점점 다수 의견이 더 득세하게 되어 소수 의견은 점차 사라져가는 것'을 말한다.
이와는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최근 몇년간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가수 타블로의 '학력 위조'문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사건의 요지는 이렇다. 지난 2007년 '왓비컴즈'란 닉네임을 사용하는 네티즌이 타블로의 학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글을 올리면서 문제는 불거졌다.
처음에는 타블로에게 우호적인 세력이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왓비컴즈와 동조 세력들이 여러 포털 사이트에 반복적으로 각종 의문을 제기하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진위(眞僞)를 놓고 치열한 공방이 펼쳐졌고 급기야 대다수가 타블로를 비난하기에 이른다. 부정적 나선의 증폭 효과였다. 결과적으론 타블로의 학력이 거짓이 아님이 밝혀졌지만 그 후유증은 아직도 남아 있다.
이미 종언(終焉)을 고했다고 하는 이 이론은 그러나 선거 때마다 자주 회자된다. 우세를 장담하는 측이나 불리한 여건에 있는 측 모두 승세를 굳히고 열세를 역전시키는 희망으로 삼는 것이다. 지금 막판으로 치닫는 '4·11 총선(總選)'도 마찬가지다. 여기엔 '침묵하는 숨은 표'를 자신의 우군으로 간주하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 특히 엎치락 뒤치락 '박빙의 승부'를 펼치는 것으로 알려진 제주시 갑 선거구의 경우엔 더욱 그렇다. 그야말로 선거의 묘미가 아닐 수 없다.
지난달 29일부터 시작된 선거운동기간 총선 후보들은 저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명의(名醫)인 '편작 흉내'로 바빴다. '죽은 자도 살려낸다'는 편작(扁鵲)처럼 제주4·3 및 해군기지 문제, 신공항 건설 등 지역의 제반 현안들을 완전히 해결하겠다는 것. 으레 정치인들의 '말 장난'으로 치부하면서도 솔깃해하는 것이 우리의 성정이다.
그러나 이들도 모르는 게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명의인 편작보다 더 뛰어난 두 사람의 고수(高手)가 있었음을. 어느 날 위(魏)나라 문왕이 편작에게 "자네 집안의 세 형제가 모두 의술에 능하다고 하던데 누가 가장 훌륭한 의원인가"하고 물었다. 편작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소인이 가장 부족합니다."
의외의 답변에 문왕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자네의 그 높은 명성은 어찌 된 건가?" 편작이 이렇게 답했다. "큰 형은 환자의 병세가 나타나기도 전에 그 원인을 제거해 치료하고, 둘째 형은 발병(發病) 초기에 치료합니다. 하지만 저는 병세가 위중해진 다음에야 비로소 치료를 합니다. 사람들이 다만 그 내용을 자세하게 모를 뿐입니다."
이제 제19대 국회의원 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그동안의 결전(決戰)을 마무리할 '운명의 날'이 마침내 도래한 것이다. 초미의 관심은 '침묵의 나선', 즉 아직까지도 숨겨진 표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 어떤 결과를 도출할지로 모아진다. '편작치병(扁鵲治病)'에서 보듯이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만으론 '명의'를 가려낼 수가 없다. 따라서 유권자인 제주도민들의 냉정하고 슬기로운 선택이 그 어느때보다 요구되고 있다. 그리고 선택(選擇)의 기준은 혈연이나 지연, 학연 등의 구태에서 벗어나 오로지 제주의 미래를 위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