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춘 칼럼]"진보는 죽었다"

[김계춘 칼럼]"진보는 죽었다"
  • 입력 : 2012. 05.15(화) 00:00
  • 글자크기
  • 글자크기
한마디로 '막장 드라마'였다. 지난 12일 통합진보당의 중앙위원회는 폭력으로 얼룩졌다. 4·11 총선(總選)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태 이후 당의 새 진로를 모색하는 자리였지만 이른바 '당권파(黨權派)'에 의해 공동대표단이 집단 폭행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를 두고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대한민국 진보는 죽었다"고 일갈했다. 진보세력의 든든한 우군인 <한겨레>조차 "좌파의 오만, 극우 어버이연합의 깽판과 무엇이 다르냐"며 "설마했는데…당권파의 실체를 봤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통합진보당은 지난해 민주노동당 및 국민참여당 등이 힘을 합쳐 창당됐다. 제19대 국회의원선거를 통해 통진당은 13석(지역구 7+비례대표 6)을 확보하며 일약 제3당으로 도약(跳躍)했다. 지역구 선거에서만 129만표(6%)를 획득했으며, 정당별 득표수(비례대표)는 219만표로 전체의 10.3%나 차지했다. 비록 당초 목표인 교섭단체 구성에는 실패했지만 놀랄만한 성과였다. 이는 기존 정당들의 행태에 극도로 실망한 국민들이 보다 참신하게 다가온 통합진보당에서 '꿈'을 찾으려는 기대의 소산이었다.

그러나 총선이 끝난지 얼마 되지도 않아 통진당은 자멸(自滅)의 길로 들어섰다. 비례대표 부정경선으로 촉발된 당내 갈등이 끝내 발목을 잡은 것이다. 이 과정에 독선(獨善)은 있을지언정 민주주의 원칙과 절차는 없었다. 특히 당권파는 패권과 기득권 지키기에 연연했다. 공동대표단에 대한 폭행도 주저하지 않았다. 과거에 정권이나 반대 정파가 창당 등을 방해하기 위해 '용팔이 사건' 같은 용역 폭력을 쓴 적은 있었지만, 당 지도부가 당원에 의해 얻어맞은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번 중앙위에서의 폭력 사태로 인해 권력 투쟁의 야욕에 불타는 당권파의 실체(實體)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들이 내지른 주먹과 발길질에 상처를 입은 것은 비단 사람만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꿈꾸던 '진보정치'가 회복 불가능한 치명상(致命傷)을 입고 말았다. 부정경선에 이어 폭력으로 민주주의를 유린함으로써 그동안 민주화를 이끈 '진보의 가치'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진보세력과 진보정치에 '조종(弔鐘)'을 울렸다는 한탄이 나오는 이유다. 오죽하면 통합진보당의 '최대 주주'인 민주노총마저 "지지 철회"를 경고하고 나섰겠는가.

'진보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불명예 퇴진한 이정희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 통합진보당 창당(創黨) 선포식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시대가 진보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이 때, 통합진보당은 민심의 바다에 배를 띄웁니다. 늘 가장 낮고 가장 넓게, 몸을 낮추고 문을 열고 국민의 목소리를 듣겠습니다."

그러나 6개월도 채 안돼 통진당은 자신들의 다짐을 스스로 헌신짝처럼 내던졌다. 몸을 낮추고 문을 열고 국민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약속은, 시쳇말로 '한줌도 안되는 정파주의'에 갇혔다. 그리고 끝까지 국민들의 여망을 저버렸다.

우여곡절을 거쳐 통합진보당은 전자투표를 실시, 비례대표 당선자 및 후보자 전원의 사퇴 등을 내용으로 하는 당 혁신 결의안 가결과 함께 강기갑 비대위(非對委) 체제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당권파가 즉각 "원천 무효"라며 강력 반발해 여전히 안갯속을 걷고 있다. 통합진보당이 '죽었다는 진보'를 다시 되살려낼지, 아니면 난파선(難破船)이 되어 깊은 바다로 가라앉을지는 순전히 그들의 행보에 달렸다.

<논설실장>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185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