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춘 칼럼]플라톤의 다섯 가지 행복조건

[김계춘 칼럼]플라톤의 다섯 가지 행복조건
  • 입력 : 2012. 06.12(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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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을 놓고 말이 많았다. 필자의 진의(眞意)와는 다르게 김태환 전 지사를 옹호하느냐는 반박에서부터 '권력무상 인생무상'을 새삼 느낀다는 반응도 있었다.

이 칼럼에서 필자는 음주운전사고로 입건된 김 전 지사와 관련 '죄'에 대한 미움보다는 '자연인'으로서의 초라한 모습에 씁쓸함과 자괴감을 느낀다고 썼었다. 그리고 밝히진 않았지만 그 '진의'는 우근민 제주도정 등 현재 각 분야에 포진해 있는 실세(實勢)들에게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자중자애'하기를 권하고 싶었다.

아무리 막강한 권력이라도 10년을 넘기지 못하고,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한다는 것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의 진리다. 이같은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오욕(汚辱)의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은 사람들의 부질없는 '욕심'에서 비롯된다는 게 답일 것이다.

서양문화의 정신적 기초를 마련한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 플라톤은 그의 저서 '행복론'에서 다섯 가지 행복(幸福)의 조건을 말한 바 있다.

첫째, 먹고 입고 살기에 조금은 부족한 듯한 재산(財産) 둘째,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 약간은 부족한 용모(容貌) 셋째, 자신이 생각하는 것의 절반 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名譽) 넷째, 힘을 겨루었을 때 한 사람에게는 이기고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體力) 다섯째, 연설을 듣고서 청중의 절반은 박수를 치지 않는 언변(言辯)이다.

플라톤이 제시한 다섯 가지 조건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그것은 완벽함과 만족함이 아니라 '모자람'과 '부족함'이다. 오늘날 시중의 잣대로 판단하면 성공보다 '낙오(落伍) 인생'에 가깝다. 그러나 이 위대한 철학자의 행복론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그 속에서 깊은 함의(含意)를 발견할 수 있다. '차고 넘치는 상태가 아닌, 적당히 모자란 가운데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 바로 행복이란 것이다. '비움'으로부터 '채움'이 이루어진다는 역설적 진리로, 서양철학보다는 동양철학을 닮았다.

사실 세상사가 그렇다. 재산이든 명예든 모자람이 없는 완벽한 상태에 있으면 그 때문에 근심과 불안, 긴장과 불행이 찾아들기 시작한다. 적당한 모자람이야 말로 현재의 삶에 감사와 평안을 가져오고, 교만과 아집으로부터 겸손과 포용의 자세를 견지케 하는 원천이 된다.

얼마전 TV에서 한 시대를 풍미(風靡)했던 어느 유명인사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난치병에 걸렸다가 천신만고 끝에 회생한 그는 병을 앓으면서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내려놓음'과 '나눔'의 가치를 소중하게 느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려놓기'가 그리 쉬운 일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재산 불리기에 혈안이 되고 끝모를 명예욕에 불타는가 하면 외모 등을 가꾸는데는 돈 아까운 줄 모르는 세태가 이를 반증한다.

플라톤의 행복론에 의하면 필자는 변변찮은 재산에 저질 체력, 어눌한 언변 등 제반 조건을 두루 갖춘 '행복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행복'을 느끼느냐 하면 그것 역시 아니다. 아직도 비우기보다는 채우기에만 급급한 이 시대의 전형(典型)이라 할 수 있다.

밥을 먹다가 돌이 씹혀도 돌보다는 밥이 많다며 껄껄껄 웃을 수 있는 이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다.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마음을 비워가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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