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DC와함께하는톡톡튀는 논술학교](5)제1회 실전 모의논술 경시대회-고교 인문·사회 논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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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직면한 문제 진단하고 해결점 찾는다면
한층 더 나은 삶이 무엇인지 명확한 견해 밝히라는 논제 제시
  • 입력 : 2012. 06.28(목)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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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 등에 밀려 버려진 휴대폰. 혹자는 변화에 익숙한 한국인의 속성에서 저돌성을 읽는다. /사진=한라일보 DB

[인문·사회논술 문제]

※ 다음 제시문들을 읽고 논제에 답하시오.

제시문 [가]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1) 일극주의, (2) 군사주의, (3) 수출주의, (4) 평등주의, (5) 각개약진주의 등에 의해 생겨나고 촉진돼 왔다.

이 5대 동인들은 각기 독립적인 것은 아니며 상호 간섭과 조합에 의해 다른 유형의 행동양식을 낳기도 한다. 예컨대, 이른바 '줄서기' 또는 '줄 세우기' 문화는 일극주의와 각개약진주의에 의해 형성· 촉진되며, 이것이 집단적으론 이른바 '쏠림'의 문화로 나타나기도 한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기질은 오랫동안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지만, 디지털시대를 맞아 재평가되었고 이젠 예찬의 대상으로까지 격상된 느낌이다. '빨리빨리'가 디지털 시대의 경쟁력 근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속도의 효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업인들이 그런 재평가에 앞장서고 있다. 기업인들의 '빨리빨리 긍정론'에 대해 "한국인을 소비의 주체로만 바라보는데다, 산업적 논리에 문화해석의 틀을 무리하게 꿰맞춘 것 아니냐는 혐의"도 제기되지만(손원제, 2005), 그 어떤 문제에도 불구하고 '빨리빨리'가 한국이 자랑하는 초고속 압축성장의 비결이었음을 어찌 부인할 수 있으랴. 물론 압축성장도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그건 그만큼 부작용이 컸다는 뜻이지 한국이 전화(戰禍)의 잿더미에서 오늘과 같은 경제발전을 이룬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건 아닐 게다. 한국의 압축성장과 '빨리빨리'를 몹시 부러워하는 나라들도 많다는 걸 감안하는 게 공정하지 않겠는가.

……중략……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역동성'과 '조급성'이라는 두 얼굴이다. 그렇듯 '빨리빨리'엔 명암(明暗)이 있지만, 아무래도 명(明) 쪽이 큰 것 같다. 그 어떤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빨리빨리' 경쟁의 근거가 되는 희망이 살아 있고, 이는 경쟁 없는 '신분사회'보다는 훨씬 낫다는 이유에서다. 그렇지만 이는 양자택일할 문제는 아니며, 지속가능한 수준의 경쟁 문화를 조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빨리빨리'가 한국사회의 구조와 작동메커니즘에 미치는 영향이 제대로 탐구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 대한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이걸 연구하면 비릴리오의 '속도의 정치경제학'을 능가하는 '속도의 문화정치학'이 한국을 무대로 탄생할 수 있으리라.

제시문 [나]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한 이야기가 있다. 외국 사람들이 지적하는 한국인의 특성에 관한 글이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이 땅에서만 살아온 우리들은 느끼지 못하는 특징이 그들 눈에는 확 띄는 모양이다. 이른바 '한국인의 빨리빨리 Best 10'이다.

·정류장에서 떠난 버스를 뒤쫓아 뛴다.

·화장실에 들어가면서 지퍼를 내린다.

·영화관에서 엔딩 자막이 끝나기도 전에 모두 퇴장한다.

·신호등을 기다리며, 언제나 출발자세로 긴장해 있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서 양치질한다.

·웹사이트가 3초에 안 열리면 닫지도 않고 다른데 클릭해 옮겨간다.

·편의점 등에서 음료수를 따서 마시면서 계산한다.

·자판기 커피 나오는 걸 채 못 기다려 컵을 잡고 기다린다.

·즉석 컵라면을 3분되기 전에 뚜껑을 열고 닫고 하다 먹는다.

·삼겹살이 익기를 기다리며, 모두가 젓가락을 들고 대기한다.

이런 빨리빨리 특징이 우리 모두에게는 어색하기는커녕 친숙하게 들린다. 우리들 자신이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하고 있는 행동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외국인들에게는 그런 행동들이 특이하게 보이는 가보다. ……중략……

우리는 이 빨리빨리를 조급성, 강박증, 충동성으로 비하하여 벗어나고 싶은 오명으로 치부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외국인들은 그런 빨리빨리 문화 속에서 한국인의 활력 즉, 바이탈리티(vitality)를 느낀다고 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낸 제프리 존스는 <나는 한국이 두렵다>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세계 어디에서도 한국 사람들처럼 변화에 대한 부담(혹은 두려움)이 적은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핸드폰, 컴퓨터, 자동차 등 다른 나라에서라면 5~10년은 족히 더 쓸 물건도 한국에서는 1~2년만 되면 골동품이 된다. 한국 사람들은 그만큼 변화에 익숙하며, 변화를 좋아하고, 또 즐기기까지 한다."

중국 인민대학의 마상우 교수도 이런 말을 한다.

"한국인들이 부끄러워했고 한때 세계적 웃음거리였던 '빨리빨리 문화'도 한류의 등장에 한 몫을 하지 않았나 싶다. 사실 음악이나 드라마, 영화 등의 빠른 전개는 한류에 빠진 중국인들을 매료시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빨리빨리 습성에서 기인하는 부지런함과 과감한 투자도 거론하지 않으면 섭섭하다."

일본 교토통신의 전 서울지국장이던 히라이 히사시는 빨리빨리의 특징을 빗대어 "한국인의 저돌성을 당해낼 수가 없어요."라고 했고, 일본의 전 소니 회장이던 이데이 노보유키는 "무서울 정도의 투자와 유연성을 앞세워 쫓아오는 한국에 당할 수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제시문 [다]

게으르다는 것은 느즈러질 대로 느즈러져서 절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하고는 다르다. 마치 극장에서 공연이 없는 날을 '공연 안 하는 날'이라고 하기보다 '공연 쉬는 날'이라고 하듯이, 우리는 저마다 사회라는 극장 또는 무대의 배우다. 우리도 때때로 휴식이, 다시 말해 쉬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공연은 주변 사람들을 지치게 할 것이고, 우리 스스로도 지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휴식 시간이나 여가 시간이 있어도, 이를테면 일요일에도 계속 움직인다. 심지어 평일보다 더 열중해서 움직이기도 한다.

……중략……

말하자면, 게으르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둔다는 것이다. 그것은 슬기로움이나 너그러움의 한 형태다. 물러났다가 세상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한가로이 거닐기, 남의 말 들어 주기, 꿈꾸기, 글쓰기 따위처럼 사람들이 별로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버려진 순간에 깃들여 있다.

제시문 [라]

누구도 하루 4시간 이상 일하도록 강요받지 않는 세상에서는 과학적 호기심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 호기심을 맘껏 탐닉할 수 있을 것이고, 어떤 수준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든 배곯지 않고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젊은 작가들은 기념비적인 대작을 내는 데 필요한 경제력을 확보할 요량으로 감각적인 작품을 써서 주의를 끌어보려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사실, 마침내 대작을 쓸 수 있을 만한 상황이 되었을 때는 이미 취향과 재능이 달아나고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직업상 경제나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은 학문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교류가 없을 경우 대학에 몸담은 경제학자들의 작업은 현실감을 상실하기 쉽다. 의료인들에겐 발전한 의학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질 것이고, 교사들은 젊을 때 배운, 따라서 그 사이 이미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변해 버렸을 지식들을 틀에 박힌 방법으로 가르치느라 분투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생의 행복과 환희가 충만할 것이다. 신경쇠약과 피로와 소화불량증 대신에 말이다. 필요한 일만 함으로써 기력을 소모하는 일 없이 여가를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여가 시간에 지쳐 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므로 사람들은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류의 오락거리들만 찾진 않을 것이다. 적어도 1퍼센트는, 직업상의 일에 써 버리지 않은 시간을 뭔가 유용한 것을 추구하는 데 바칠 것이다. 또한 그러한 일들은 그들의 생계와 관련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독창성이 방해받는 일은 없을 것이며, 나이 많고 박식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표준에 맞출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가의 좋은 점은 이러한 예외적인 경우에서만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행복한 생활의 기회를 가지게 된 평범한 남녀들은 보다 친절해지고, 서로 덜 괴롭힐 것이고, 타인을 의심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또한 전쟁을 일으키게 되면 모두가 장시간의 가혹한 노동을 해야 할 것이므로 전쟁 취미도 사라질 것이다.

제시문 [마]

이야기의 시작부터 주인공의 적대자로 설정된 '빠른 자들'이 몰락의 길을 간다면, 느린 자 존 프랭클린은 끊임없이 성장을 거듭하며 자기 자신을 발전시켜 나아간다. 작가는 "프랭클린은 그렇게 느리기 때문에, 결코 시간을 잃지 않는다."라는 말과 함께 그의 느림에서 역설적으로 성장과 발전의 동력을 이끌어낸다. 프랭클린은 탁월하게 "시간을 경영하는 인간"인 것이다. 소설[주: 스텐 나돌니의 <느림의 발견>]의 제8장에 이르면, 오스트레일리아까지의 긴 항해를 마치고 귀향한 존 프랭클린이 "이제 나는 내 자신의 리듬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자기발견의 은유임은 자명하다. 이어지는 소설의 제9장에서는 귀향이후 그의 스승 옴(Orme) 박사를 찾아간 존 프랭클린은 자신의 변화, 성장을 확인받는다. 옴 박사는 개인의 지각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기구를 발명하여 존이 "가장 느린 자"임을 '객관적으로' 증명해주는데, 이제 그의 느림은 "그의 특별함"이지 더 이상 그의 결함이 아니다. 그의 느린 속도는 다음에서 드러나듯 자아의식과 정체성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다.

그는 도시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인간의 속도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몇몇의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느리게 태어나는 것이 맞는다면, 이 사람들은 느려야만 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되는 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아닐 것이었다.

'가장 느린 자' 존 프랭클린은 북극탐험을 결심하는 이야기의 중반부에 이르면 이제 사람들에 의해 "거인"으로 인정받는다. 스텐 나돌니는 자신의 반영웅의 느림을 물리적인 것에서 그치게 하지는 않는다. 이미 언급했듯 '느림'은 단순히 '빠름'의 반대를 의미하지 않는다. 프랭클린의 느림은 그로 하여금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 '빠른'자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한다. 프랭클린은 느려서 사물을 느리게 인지하지만 대신 더 많은 것을 본다. 이미 어린 시절 학교 급우들과 함께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될 때, 즉 빠른 덕분에 신망을 누려왔고 교정에서 군림하던 "학교운동장의 왕들"이 방향을 상실하고 숲을 빠져나오지 못할 때 프랭클린만이 방향을 읽어 낼 수 있었다. 그만이 점차적인 변화들을 관찰했고, 빠른 아이들이 속도에 취해 아무 것도 보지 못한 때, 그만이 태양의 위치와 지면의 경사를 주시하고 인지했던 것이다.



<논제 1>제시문 [가], [나], [다], [라], [마]를 두 가지 입장으로 나누어 논지를 요약·정리하고, '경쟁'의 관점에서 비교하여 설명하시오. (800자 이내)

<논제 2>우리가 한층 더 나은 삶을 위해 개인적, 사회적, 국가적 차원에서 현재의 문제를 진단하고, 그 문제의 해결 방안을 '논제 1'의 두 가지 입장 중 어느 한 가지 입장에 따라 논술하시오. (1000자 이내)



이번 회에 게재된 원고는 지난 5월 26일 제주도교육청과 제주도논술면접연구회가 마련한 '톡톡튀는 논술학교' 고교 실전 모의논술 경시대회 문항입니다. 우수 입상작과 심사평은 다음회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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