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춘 칼럼]'카사 델 아구아' 정녕 없애려는가

[김계춘 칼럼]'카사 델 아구아' 정녕 없애려는가
  • 입력 : 2012. 09.25(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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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를 둘러싸고 논란의 중심에 있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Casa del Agua)'는 '물의 집'이란 뜻이다.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 해안가 언덕에 자리잡고 있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말 그대로 물 위에 떠 있는 느낌이 든다. 멕시코의 세계적인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가 설계했다. 지난 2011년 레고레타가 타계(他界)했으니 카사 델 아구아(2009년 완공)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레고레타는 생전에 '석양에 부서지는 금빛 바다와 바람, 원색의 제주자연'에서 영감(靈感)을 얻어 카사 델 아구아를 설계했다 한다. 전문가들은 자연을 건드리지 않고 조화를 이루면서 빛과 바람 등을 끌어들인 '레고레타 스타일'이 갤러리 곳곳에 묻어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리카르도 레고레타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2011년 12월30일 그가 타계했다는 소식에 세계 건축계는 슬픔에 잠겼다. '보편성과 지역성을 동시에 가진, 현대 건축에서 보기 드문 거장(巨匠)'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 건축상' 심사위원을 10년 넘게 역임했을 정도로 세계 건축계에서 레고레타가 차지하는 위상(位相)은 실로 지대했다. 프리츠커 수상자로 일본 건축계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안도 다다오가 가장 존경했던 스승이 바로 레고레타였다.

이런 세계 거장의 작품이 현재 철거 논란에 휩싸여 파문이 일고 있다. 카사 델 아구아는 당초 앵커호텔의 모델하우스였다. 문제는 호텔을 짓던 회사의 부도로 건축 전반이 다른 건설사로 넘어가면서 발생했다. 새로운 시공사가 이 건물을 철거하고 대신 그 자리에 공원을 조성하겠다고 밝히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모델하우스를 예술작품으로 보면 '철거는 만행(蠻行)'이란 문화계와 뜻있는 인사들, 예술작품을 모델하우스로 보면 '철거는 정당한 법 집행'이라는 시공사 및 관련당국이 정면 충돌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진행상황은 업자와 당국이 (법적으론) 유리해 보인다. 최근엔 레고레타의 아들이 제주를 방문 "갤러리(모델하우스)가 있으면 더욱 좋겠지만 철거도 이해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제(前提)조건이 깔려 있었다. "아버지의 건축철학과 콘셉트에 맞도록 공사가 마무리되어야 한다"는 요구다. 그러면서 앵커호텔과 콘도리조트의 외벽 하단부 석재 붙임이 원(原) 설계와 다르게 변경된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는 역(逆)으로 말하면 호텔 등의 전체 공정이 기본설계에서 벗어나 잘못될 경우 레고레타의 '작품'은 갤러리인 카사 델 아구아 하나만 남게 된다는 뜻도 된다. 법을 앞세운 무작정의 철거는 예술작품의 파괴를 의미하며 그것은 우리 손으로 귀중한 문화유산을 말살시키는 것과 같다. 관련당국이나 사업자가 법으로만 밀어붙일 게 아니라 보다 신중을 기하라고 사람들이 요구하는 이유다.

철강산업 쇠퇴로 암울한 회색도시로 변했던 스페인 북부의 빌바오가 미국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하여 연간 100만명이 찾는 관광명소로 기사회생(起死回生)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게 바로 '문화의 힘'이다.

이제 레고레타는 가고 없다. 그의 작품은 아시아에 고작 두 점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일반인이 접할 수 있는 곳은 제주가 유일하다. 라틴아메리카 거장의 열정과 숨결이 스며있는 '카사 델 아구아'를 없애려는 것은 문화와 역사에 대한 배신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김계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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