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의 학문은 수신(修身)이 반이요, 나머지 반은 목민이다. 성인(聖人)의 시대가 이미 오래 되었고, 말도 없어져서 그 도(道)가 점점 어두워졌다. 요즈음의 사목(司牧)이란 자들은 이익을 추구하는 데만 급급하고 어떻게 목민해야 할 것인가를 모르고 있다. 이 때문에 백성들은 곤궁하고 병들어 줄을 지어 진구렁에 떨어져 죽는데도 사목된 자들은 고운 옷과 맛있는 음식에 자기만 살찌우고 있으니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학자인 다산(茶山) 정약용의 '목민심서(牧民心書)' 서문에 나오는 말이다. 이 책은 다산이 전라남도 강진에서 귀양생활을 하는 동안 조선과 중국의 역사서 등을 참고해 만들었다. 지방 관리들의 폐해를 제거하고 행정을 쇄신하고자 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외에 농민의 실태와 서리의 부정을 비롯해 토호의 작폐 및 도서민의 생활상태 등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근래 들어 이 책이 다시 회자(膾炙)되는 것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실과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독립영웅이자 국부(國父)인 호치민이 생전에 '목민심서'를 탐독해 실천에 옮겼다고 알려진 것(진위여부를 놓고 논란도 있다)도 한 몫을 거들고 있다.
베트남 사람들이 '호 아저씨'라 부르던 호치민(胡志明)은 "나는 베트남과 결혼했다"며 평생 결혼을 하지 않은 채 오직 나라를 위해 살았다. 그가 지난 1969년 작고했을 때 단 한푼의 돈도, 한 평의 땅도 없었다고 한다. 두칸짜리 집무실과 폐타이어를 기워 만든 샌들이 그가 가지고 있던 전부였다.
특히 호치민은 목민심서를 탐독하는데 그치지 않고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다산을 꼽아 평생의 사표(師表)로 삼았다고 한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3꿍 정신'도 목민심서를 읽고 그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전해진다. 3꿍은 '함께 산다(꿍아), 함께 먹는다(꿍안), 함께 일한다(꿍땀)'로 청빈한 삶과 함께 호치민의 민본(民本)정신이 집약되어 있다.
제18대 대통령선거가 80일 안으로 다가오면서 선거판이 요동치고 있다.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안개정국'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부동의 1위를 지켜오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과거사 인식'과 측근비리 의혹 등으로 지지율이 급락세로 돌아섰다. 추석 전 여론조사 결과, 다자간 대결구도에서는 앞선 상태였지만 양자대결은 민주통합당 문재인·무소속 안철수 후보에게 모두 뒤지는 수모를 겪었다. '수신제가(修身齊家) 연후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란 옛 말이 고스란히 입증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문재인 후보는 대선 후보로 확정된 이후 '컨벤션 효과'가 나타나고 있지만 안철수 후보와 지지율 격차를 벌이지 못하고 오히려 뒤처지고 있다. 낮은 호남 지지율이 가장 큰 원인으로 참여정부 시절 '호남 소외'가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안철수 후보 역시 다운계약서 및 논문표절 등 계속되는 의혹(疑惑) 제기에 주춤거리고 있다. 그의 소신 및 비전과 함께 때묻지 않은 신선한 인물임을 강조해왔던 '안철수의 생각'이 되레 흠집을 내는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오는 것은 아이러니다.
이번 추석 민심은 연말 대선(大選)의 향방을 가늠해보는 첫번째 분수령(分水嶺)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시작일 뿐이다. 대권을 꿈꾸는 각 후보들이 '목민심서'에 담긴 뜻이나마 제대로 알고 국민들에게 다가가길 주문한다. <김계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