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러시아의 대문호(大文豪) 톨스토이의 단편 소설이다. 주인공인 이반 일리치는 법률가로 자신의 직무에 나름대로 충실한 사람이었다. 출세와 재물에도 민감했으며 주변 사람들로부터 꽤나 괜찮은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했다. 이반의 삶은 여느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러던 그의 인생은 45세 되던 해에 병을 얻으면서 확연하게 달라진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질병이 치명적(致命的)임을 알고 난 이후 허례허식 등으로 치장되었던 기존의 삶은 차츰 파괴되고 정신마저 무너져 갔다. 그리고 다가올 죽음을 인식하게 된다.
"문제는 맹장도 신장도 아니다. 산다는 것 그리고 죽음에 있는 것이다. 생명은 늘 있어 왔다. 그러나 이제 사라지고 있으며 나는 그것을 붙잡지 못한다. 그렇다. 나 이외의 사람들은 모두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문제는 다만 오늘이냐 내일이냐 하는 시간 문제다. 전에는 희망이 있었다만 지금은 어두움 뿐이다. 전에는 내가 여기 있었으나 이제는 저기로 가고 있는 것이다. 거기는 과연 어디일까?"
결국 이반 일리치는 "죽음이 모두 끝났어, 이제 죽음은 더 이상 없어"란 독백(獨白)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자신의 삶이 허위(虛僞)였다는 것을 깨닫고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하지만 이반이 죽은 후에도 소설 속의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허망한 세상살이를 계속해 나간다.
지난 주는 필자에게 매우 우울한 나날이었다. 오십줄에 갓 접어든 막내 처남이 투병생활 끝에 세상을 등졌다. 오십대 중반의 친구 부인도 유명(幽明)을 달리했다. 모두 불시에 찾아든 암(癌)을 극복하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떠난 것이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란 소설이 떠오른 것은 막내 처남이 남긴 말 때문이었다. 죽음을 앞두고 처남은 가족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최선을 다해 살아왔기에 후회는 없습니다. 오히려 과분한 삶을 살다 가는 것 같습니다." 고요와 평온함이 그윽하게 담긴 그 눈길을 바라 보노라니 그저 가슴이 먹먹하기만 했다. 생(生)을 더 붙잡기라도 했으면, 어린 조카들을 잘 부탁한다는 말이라도 했으면 속이나마 편할텐데 차마 눈물조차 흘리지 못했다.
그 와중에 스스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필자가 저 입장에 있다면 과연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후회없는 삶을 살다 가노라 말을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세상에 대한 미련을 늠연히 떨쳐낼 수 있었을까. 지금 이 순간에 생각해도 스스로 자신이 없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다가온다. 화려한 삶을 살았든, 평범한 삶을 영위했든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다. 그러기에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가 마지막 가는 길을 위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게 무척이나 어렵다.
필자만 하더라도 불과 일주일 전에 "후회없는 삶을 살다 가겠다"고 마음을 다 잡았지만 작심삼일(作心三日)이다. 소설 속에 남겨진 그 사람들처럼 벌써 물신(物神)의 허영과 가식에 찌들어 있는 자아를 발견하곤 화들짝 놀란다. 아무리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그 정도가 지나침을 스스로 지울 수가 없다.
인간이 가장 겸허해지는 것은 바로 죽음과 가까울 때라고 한다. 현자(賢者)는 그 이전, 즉 현재의 삶에서 '겸허'를 배우고 실천하는 사람일 터다. 이 세상과 작별하며 큰 깨달음을 준 막내 처남의 명복(冥福)을 삼가 빈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