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자 한라일보 1면은 제주시 779가구가 아직도 연탄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시 전체 16만8500여 가구의 0.46%다. 제주지역엔 지난 2004년 도내 유일의 연탄공장이었던 제주연료가 폐업함에 따라 아예 연탄공장이 없다. 때문에 장당 340원의 운송비를 제주시가 부담하며 경북 경주시에서 연탄을 공급하고 있다.
필자의 고등학교 시절인 70년대 중반만 해도 연탄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부엌 한 켠에 연탄을 잔뜩 들여 놓으면 마음이 든든해지는 시절이었다. 그러나 시골에서 제주시로 '유학'을 와서 자취(自炊)를 하던 내게 연탄불 관리는 결코 쉽지 않았다. 툭하면 꺼져버리는 연탄불을 살리기 위해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통사정을 한 게 한 두번이 아니다. 특히 추운 겨울철이면 중독(中毒) 사고로 인해 학교에 나오지 못하는 자취생들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것은 지난 추억담을 위해서가 아니라 문득 안도현 시인의 '연탄 한장'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시인은 '연탄'에 대해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기꺼이 연탄 한장 되는 것//<중략>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을 퍼먹으면서도 몰랐네/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한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여태껏 그 누구에게 연탄 한장도 되지 못하였네.//'
과연 우리는 언제 '연탄'처럼 온 몸으로 누군가를 사랑해 봤을까. 한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것이 두려워 현실을 회피하고 도망치는데 급급하진 않았을까. 이웃 나눔을 실천하는 구세군 자선냄비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서울에선 모금함에 1억여원 짜리 수표가 등장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철가방 기부천사(寄附天使)'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도 최근 만들어져 고(故) 김우수씨의 선행이 새삼 회자되고 있다.
김우수씨는 고아 출신으로 교도소를 들락거리던 전과 4범의 인물이었다. 그러나 지난 2006년 출소(出所)를 앞두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발행하는 '사과나무'에서 소년소녀 가장들의 사연을 접하고 새 삶을 살게 된다. 자신과 같이 어렵고 힘든 생활을 영위하는 어린이들을 돕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는 중국집 배달로 버는 월 70만원 중 자신의 생활비(20만원)를 제외한 나머지를 어린이재단 아이들을 위해 후원했다. 장기기증 서약서 등도 재단에 기부했다. 2011년 9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질 때까지 그의 선행(善行)은 계속됐다. 자신이 처한 불우한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생(生)의 마지막 순간에도 '사과나무'를 심은 그야말로 '행복과 희망의 배달부'였다. 그리고 그 파장은 영화 '철가방 우수氏'를 통해 조용히 확산되고 있다.
나눔은 소통(疏通)이다. 우리 사회가 그래도 건강함을 유지하는 것은 곳곳에 우수씨와 같은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한해를 마감하는 연말로 접어들었다. 훈훈하고 따뜻한 정이 그리운 계절이지만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서인지 소외(疎外)된 이웃을 찾는 발길이 뚝 끊겼다 한다. 날씨마저 무척 쌀쌀해 체감온도는 더욱 낮아졌다.
안도현 시인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