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이 한국에서 뮤지컬과 연극, 영화 등 여러 장르로 부활(復活)했다. 아니 부활이라기 보다는 거의 신드롬 수준의 반응을 일으키며 문화계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기폭제(起爆劑)가 된 것은 지난해 12월 중순 개봉된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이었다.
이 영화는 톰 후퍼 감독과 뮤지컬 프로듀서 카메론 매킨토시의 합작품으로 개봉 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었다. 관심의 초점은 톰 후퍼가 아카데미 4관왕에 빛나는 '킹스 스피치'를 연출한데다 카메론 매킨토시 또한 세계 4대 뮤지컬로 불리는 '레미제라블·오페라의 유령·캣츠·미스 사이공'을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명성에 걸맞게 개봉 3주만에 관객 400만명을 돌파했으며 흥행 돌풍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같은 성과는 우선 휴 잭맨과 러셀 크로우, 앤 해서웨이 등 명품 배우들의 호연(好演)과 함께 뛰어난 연출력에 기인한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상당부분 원작 소설 속에 함축되어 있는 '인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흥행 돌풍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
'오(Les) 비극(Miserables)'이 원제(原題)인 레미제라블은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이란 뜻도 가지고 있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휴먼 대서사시로, 필자의 어린 시절 선생님으로부터 '필독서(必讀書)'로 권장받은 작품이기도 했다.
그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굶주림으로 우는 조카들을 위해 주인공인 장발장은 빵 한 조각을 훔치게 된다. 그로 인해 그는 절도죄로 5년, 탈옥에 대한 형벌로 14년 등 19년간 감옥생활을 하게 된다. 가석방으로 풀려난 장발장은 세상을 원망하고 저주하지만 미리엘 신부(神父)를 통해 새 사람으로 태어나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간다. 사랑과 용서, 구원과 희망을 노래한 감동의 대작이 바로 '레미제라블'이다.
영화 레미제라블이 혹한(酷寒)에도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일부 장면이 한국적 현실과 오버랩되는 것과 무관치 않다. 예컨대 대혁명 이후에도 프랑스는 여전히 빈곤과 불평등이 팽배했다. 이는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빈부(貧富) 격차 등이 해소되지 않은 우리의 사회 현실과 비슷하다. 또 이 영화는 실패한 혁명을 다루고 있는데 청년들의 봉기는 실패했지만 민중의 힘에 의해 결국 새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제시한다. 영화 레미제라블이 지난 대선(大選)에서 패배한 사람들에게 '힐링' 혹은 '씻김굿'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도 그래서 나온다.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 판틴(앤 해서웨이)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예전에 난 꿈을 꾸었었지/그 땐 희망에 찼고 인생은 살아볼 만했지/사랑은 영원하리라 믿었고 신은 자비로우리라 여겼네/하지만 잔혹한 현실은 한밤 중에 천둥소리를 내며 들이닥쳤네."
2013년 오늘의 한국사회는 날로 심화되는 양극화(兩極化)와 함께 인간성에 대한 결핍과 빈곤, 불의 등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 박근혜 새 정부가 그 무엇보다 심혈을 기울여야 할 과제도 이 부분이다. 지금 국민들은 야권 후보들이 내걸었던 '사람이 먼저'거나 '저녁이 있는 삶'을 희구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추운 겨울, 꽁꽁 언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는 것은 영화 '레미제라블'이 아니라 새 정부의 소임(所任)이고 역할이어야 한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