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 출근, 4시 퇴근' 저녁이 있는 삶

'9시 출근, 4시 퇴근' 저녁이 있는 삶
윤구병의 '노동시간 줄이고 농촌을 살려라'
  • 입력 : 2013. 02.01(금) 00:00
  • 표성준 기자 sjpy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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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가 한창 산업화에 매몰돼가던 1970년 '뿌리깊은 나무' 초대 편집장을 지낸 윤구병은 철학자이자 농부다. 그는 15년간 몸담았던 대학 철학교수직을 그만두고 전북 부안으로 내려가 농부로서의 삶을 살며 위기에 처한 도시 문명의 대안을 모색했다. 그가 그곳에서 설립한 '변산교육공동체'는 논농사와 밭농사를 짓고 자급자족하면서 자녀들에게 공동체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줬다. 그의 인생 궤적은 삶에 지친 도시인과 삶의 새로운 문화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풍부한 영감과 함께 희망의 단초도 제공했다.

윤구병은 묵직한 혜안이 돋보이는 철학자이자 여러 조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실천가이기도 하다. 그는 변산공동체를 통해 '죽어가는' 농촌에서 그 구성원들의 삶을 살찌우게 했던 것처럼 도시에서 새로운 희망을 준비하고 있다. '하루 6시간 근무제'가 바로 그것이다.

그가 2009년 복귀해 운영 중인 보리출판사는 최근 '9시 출근, 4시 퇴근'이라는 파격적인 실험을 하고 있다. 모두 정규직인 이 회사 사람들은 오후 4시면 퇴근해 개인의 또 다른 삶을 꾸려나가고, 어떤 근로 조건의 불이익도 없다. OECD 국가 중 근로시간 1위, 비정규직 1위의 불명예스러운 현실과는 격이 다르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주요 신문이 앞다퉈 이를 보도했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인 일자리 부족을 해소하고 여가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획기적인 대안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윤구병은 이 책에서 기성 정치인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진보적 시각에서 수구세력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차원이라 할 수 있는 근대 산업사회의 극복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국회의원이나 지식인 가운데 산업사회의 대안인 농촌의 현실을 정확히 알고 이를 육성시키기 위해 고민하는 이는 드물다. 그리고 대부분의 엘리트가 권력투쟁이나 경제성장 이데올로기에 갇혀 미래를 보고 있지 못한다고 진단한다.

한국의 농촌이 고령층만 남아 고사해가는 사이 다국적기업체들은 세계 식량시장을 장악했다. 한국 사람들의 입맛조차 여기에 길들여지고, 젊은 세대들은 더욱더 농촌에 가지 않으려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농촌의 공동체적 합리성이 무너진 자리를 눈앞의 이익에 치중하는 도시의 합리성이 대신하고, 이런 환경에서 교육받은 아이들은 지나치게 커진 두뇌와 하얀 손으로 어리석은 미래를 준비한다. 윤구병은 말한다. "산과 들과 바다와 해와 바람에서 신선한 상상력을 길어올려야 한다." 윤구병·손석춘 지음. 알마.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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