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도덕경』은 소국과민(小國寡民·작은 나라와 적은 국민)의 국가 형태를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런 나라의 백성들은 음식을 달게 먹고(甘其食), 입은 옷을 아름답다 여기고(美其服), 그들이 사는 곳을 편안하게 여기며(安其居), 그 풍속을 즐거워 한다(樂其俗)는 것이다.
또 중국 후한시대의 사람인 중장통(仲長統)도 "편안하게 살면서 자신이 하는 일을 즐거워하며 자손들을 양성하면 천하가 편안해질 것이다(安居樂業 長養子孫 天下晏然)"라고 하였다.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는 것을 뜻하는 '안거낙업'의 유래다.
안거낙업(安居樂業)은 박근혜 새 대통령 당선인의 정치관이자 정치철학이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이 말을 즐겨 사용했다. 지난 2012년 신년인사를 비롯 대선 출마 때와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도 어김없이 안거낙업을 입에 올렸다. 그리고 공식명칭으로 채택된 '박근혜 정부'의 국정 지향점(志向點)으로 '안거낙업'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박 당선인은 최근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가진 새누리당과의 연석회의에서 다시 한번 이 말을 강조했다. 그는 "국민의 삶을 편안하게 하고, 즐겁게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한다는 '안거낙업'을 지향점으로 삼아 누구나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누릴 수 있고, 일한 만큼 보상받고 억울한 일을 겪지 않는 사회를 꼭 만들겠다"고 밝혔다. 박 당선인이 말한 안거낙업의 기저(基底)엔 내가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각자 자기 일로 자기 만족감을 느낄 때가 가장 큰 행복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오늘날 상당수의 국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빠져 있다. 일순간에 빈민층으로 떨어지는 상황이 나에게 올 수 있다는 불안감도 상존(尙存)한다. 그런 점에서 국민 각자가 자기 위치에서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시대를 만들겠다는 박 당선인의 판단은 지극히 올바른 방향이다.
그러나 뜻이 좋다고 모든 게 통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올 설 명절의 밥상머리에서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 같은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토록 강조했던 '안거낙업'도 화제 밖으로 밀려났다. 그것은 국무총리 등 뒤늦은 인선(人選)과 관련 쌓인 피로감도 원인이겠지만, 짧은 시간동안 각인된 박 당선인의 '불통(不通) 이미지'가 더욱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 중에서도 인사청문회와 관련된 문제 제기는 국민들과 큰 괴리감을 보였다. 박 당선인은 자신의 첫 조각(組閣) 작품으로 내놓았던 김용준 전 국무총리 후보자가 낙마(落馬)한 것이 아쉬웠던지 인사청문회의 '가혹함'을 강조했다. "이렇게 되면 누가 추천하거나 나설 사람이 없을 것"라고도 말했다.
하지만 이는 일반 국민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생각이다. 국민들은 박 당선인이 말하는 '능력'보다는 고위공직자로서 갖추어야 할 도덕성과 청렴성을 보다 중시한다. 양파 껍질처럼 계속 드러나는 불분명한 재산증식이나 병역 문제 등을 바라보며 국민들은 큰 허탈감과 자괴감을 느낀다. 과거의 해묵은 관행이라고는 하나 서민들의 경우 언감생심(焉敢生心) 엄두도 못내볼 사안들이다.
새 정부의 지향점인 '안거낙업'도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국민과의 격의없는 소통(疏通)에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믿음이 없으면 설 수가 없다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은 박 당선인 스스로가 익히 경험해 온 바가 아니던가.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