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당굿 기록](6)수산본향당 과세문안

[제주당굿 기록](6)수산본향당 과세문안
"본향신에 가족의 한해 무사안녕 기원해야 마음 편해"
  • 입력 : 2013. 03.14(목) 00:00
  • 김명선 기자 nonamewind@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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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본향당 단골들이 순서대로 제물을 올리고 있다.

도내 본향당제 중 가장 큰 규모… 3개 마을 따로 제 지내
당제 참여위해 돼지고기 산적조차 안할 정도로 정성들여

설을 지낸 다음날 새벽, 하얀색 스웨터를 입은 여인들이 하나 둘씩 수산리 본향당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 여성들은 본향당제에 참여하기 위해 짧게는 3~4일에서, 길게는 2주 정도 돼지고기를 만지지 않았다. 설 차례 음식을 하면서 으레 돼지고기 산적을 해야하지만 몸에 부정을 타지 않을까 싶어 아예 제수품 목록에서 제외시켜버렸다. 본향당을 찾기전에는 상가집에도 다니지 않고 동물 등이 죽어 있는 모습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이런 정성을 드리지 않고서는 본향당에 들어서기조차 꺼리는 이 여성들이 바라는 것은 가족의 무사안녕이다.

▲오용보 심방이 당제를 집전하고 있다.



▶통합형 본향당 원형 간직=수산본향당(제주특별자치도 지정 민속자료 9-4호)은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 514번지에 위치해 있다. 수산본향당은 '올뤠 모루 하로산당'이라고도 하며 고잡(수산2리 옛 명칭), 수산1리, 고성·오조·성산리 등 다섯 마을이 본향으로 모시는 통합형 신당이다.

당신(하로산또)은 생산·물고·호적·장적을 관장한다. 제일은 1월 2일, 2월 13일, 7월 8일, 11월 14일(시만국대제일)이고 정월에는 수산1리가 택일해 마을제를 집행한다.

당집 안의 제단에는 나무로 만든 신상(神像) 2개를 모시고 있다. 신상에는 남녀 구별을 해서 한복을 입혀 놓았다. 하지만 신상의 목이 모두 잘려 머리 부분은 훼손된 상태이다. 1970년대 마을 청년이 나무인형의 목을 부려뜨렸는데 얼마 있지 않아 그 청년이 급사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앞서 5개 마을 외에 난산리, 신양리, 시흥리까지 포함 8개 마을 여성들이 모여 함께 당제를 지냈다고 하니 그 규모가 제주도에서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된다.

▲본향당 제단

▲새도림



▶옷 정갈하지 않으면 쫓겨날 각오=수산본향당의 상단골은 수산2리와 수산1리 여성들이다. 이들은 제단을 중심으로 왼쪽편에 자리잡는데 제단과 가장 가까운 곳에 수산2리, 바로 옆으로 수산1리 여성들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한복 위에 하얀색 스웨터를 입고 있는데 "당신을 모시기에 앞서 절대로 부정한 행동을 하지 않고, 옷도 정갈하게 갖춰입는다"는 것이 상단골들의 설명이다. 예전에는 하얀색 옷을 입지 않으면 아예 본향당 출입을 금했을 정도로 규율이 엄격했단다. 이제는 세월이 흐르면서 하얀색 겉옷을 입지 않아도 되지만 상단골들의 따가운 눈총은 받아야 한다. 단골들은 하나같이 "수산본향당에 오기 위해서 정성을 드리지 않고 올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본향당을 찾는 여성 대부분이 결혼후 아이가 생기고 난 뒤부터 다녔다고 했다. 50여년을 늘 한결같이 다니고 있다는 한 할머니는 큰 아이의 나이와 비교해 당에 다닌 연수를 헤아렸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가족들의 무사안녕이다. 다른 마을의 신과세제와 달리 단골들이 적어온 가족들의 이름을 연명하지 않았다. 심방의 말을 빌리자면 예전에 단골들의 수가 너무 많아 일일이 신에게 다 고하자면 날이 새어 버렸기 때문에 이를 생략했단다. 올해는 단골의 수가 예년에 비해 많이 줄었지만 당제가 모두 끝나니 오후 2시가 넘어섰다. 예전에는 날이 저물때까지 굿이 이어졌다.

▲쌀점괘

▲본향당 전경

▶"주변에 흩어진 당을 모아 복원해야"=수산본향당은 오용부 심방(51)이 3년전부터 집전하고 있다. 이 본향당의 계보는 김씨→강씨→조씨 등의 12대 조상에 이어 조건평→빌레옥선→조인배→ 강금자 심방을 거쳐 3년전 오 심방이 집전하고 있다.

수산본향당의 명도는 마을주민들이 쇠를 모아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오 심방은 29살이 되던 해에 굿판에 다니기 시작했고 10여년전 당시 수산본향당 심방인 강금자씨를 쫓아다니다가 수산본향당 명도를 물려받았다. 오 심방은 수산본향당 외에 고성리, 신산리 당제도 집전하고 있다.

오 심방은 "수산리 여러곳에 당이 흩어져 있는데 이곳을 한 곳에 모아 누구나 편히 다닐 수 있었으면 한다"며 "수산 본향당은 제주에서 가장 크고 원형도 잘 보존된 상태인데 당을 지키려는 마을 주민들의 열의가 대단한 만큼 관계 기관이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당신이 사냥하는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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