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춘 칼럼]영화 '지슬'과 '비념'에 담긴 제주

[김계춘 칼럼]영화 '지슬'과 '비념'에 담긴 제주
  • 입력 : 2013. 03.19(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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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을 다룬 영화 '지슬'이 지난 13일 관객 1만명을 돌파했다. 그것도 전국적인 개봉(21일)을 앞둬 제주에서만 이뤄낸 결실로, 영화의 부제(副題)처럼 '당신과 나의 뜨거운 감자'가 된 것이다. 독립예술영화 흥행 기준이 1만명임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놀라운 성과이자 새로운 흥행 기록이 아닐 수 없다.

모 언론은 '지슬'을 가리켜 서울 중심의 문화 환경에 지역적 이야기로 맞선 제주 토박이 오멸 감독의 '문화적 항쟁'으로 평가했다. 또 영화를 통해 제주4·3을 기리겠다는 의지가 흥행 열풍을 불러오며 '지슬의 난(亂)'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화 '지슬'의 성공 요인은 분노하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선동하는 방식이나 감정적인 면을 내세우지 않은데 있다. 그러기에 내용도 희생자들에 대한 '제사(祭祀)'와 피해자들에 대한 '치유(治癒)'에 초점을 맞췄다. 여기에 비전문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와 흑백필름이 빚어내는 빼어난 영상미가 돋보였다. 영화를 본 평단과 관객들의 반응도 호평 일색이다.

오멸 감독의 뜻깊은 의도는 영화 곳곳에 숨겨져 있다. 제주어로 나오는 대사를 대신해 한글자막이 나오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다. 제주에서의 관객 목표를 굳이 3만명으로 잡은 것도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이에 대해 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3만명 이상이 4·3으로 돌아가셨고, 돌아가신 숫자만큼 알려야 한다는 숙제가 있다"고 밝혔었다.

영화 '지슬'은 또다른 의미를 함축(含蓄)하고 있다. 현기영 소설가가 '순이삼촌' 등을 통해 제주4·3을 글로 알렸다면 강요배 화백은 '동백꽃 지다'로 대변되는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오멸 감독은 영화로 승화시켰다. 제주4·3을 모티브로 세번째 예술의 옷을 입힌 것이다.

'지슬'의 진한 감동이 채 가시기 전에 또 한편의 영화가 제주를 찾았다. 오는 4월3일 전국 개봉을 앞두고 18일 제주에서 시사회를 가진 임흥순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비념'이 바로 그것이다. 이 영화는 4·3사건으로 상처 입은 제주와 제주사람들, 그리고 지금 아프게 부서져 가는 강정마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지슬'이 섬 토박이의 작품이라면 '비념'은 바깥 사람(서울)의 시선에서 만들었다. 영화 제목인 '비념'은 무당 한 사람이 요령(방울)만 흔들며 기원하는 작은 규모의 굿을 말한다. 영화 속엔 '제주가 아름다운 관광지이면서 거대한 무덤이고 치유되지 못한 영혼(靈魂)들의 땅'이라는 감독의 생각이 깔려 있다.

그러나 '지슬'과 마찬가지로 '비념' 역시 4·3의 진실을 관객들에게 설명하거나 설득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강정의 현실을 의도적으로 자극하거나 들춰내려 하지도 않는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 묻힌 역사와 기억의 편린들, 나무와 돌과 바람과 숲 등 최소한의 이야기와 감각적인 이미지들을 보여줌으로써 은유와 상징을 통해 4·3에서 강정에 이르기까지 제주의 슬픔에 다가가는 방식을 취했다. 그러면서 '4·3은 유령(幽靈)이며 동시에 현재 진행형인 실체(實體)'라 말하고 있다.

올해는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이라 일컬어지는 제주4·3이 발생한지 65주년이 되는 해다. 반세기 하고도 15년을 더 넘긴 시간이 흘렀건만 4·3은 우리들 마음에 '끝나지 않은 세월이자 미완(未完)의 역사'로 남아 있다. 그리고 '강정마을의 이야기' 또한 아직 끝나지 않았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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